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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93

11장 4일째 저녁

293.


 “재미없어.” 그녀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덮고 마동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갓 만들어진 젤리처럼 호기심 많은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는개의 블라우스 사이로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다. 마동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는개의 눈동자를 다시 보았다. 는개의 눈동자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배가 고프다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밥을 먹으러 가지. 배가 고플 텐데. 맛있는 걸 먹고 기운을 내야지?라고 마동은 말했다.


 “그 말은 제가 해야 하는 말인데 순서가 바뀐 거 같아요. 사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그 말이 필요 없는 거 같긴 해요. 정말 수상한 사람이야.”는개는 정말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듯 바라봤다.


 “배가 고플 땐 무엇이든 맛있죠. 하지만 아무거나 먹기는 싫어요. 이상하죠.” 는개가 커피 잔을 만지며 말했다.


 “인간이니까 자기만의 관념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거든.”


 “재미없어.”


 는개는 책을 테이블 바닥에 놓고 이리저리 돌렸다. 마치 5살 아이 같았다. 마동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마동은 커피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케냐 AA가 지니는 강렬한 향은 그대로였지만 풍부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케냐만의 독특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커피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중에서 어떤 글이 좋았어요?” 는개는 마동의 눈 가까이 다가온 후 말을 했다. 는개만의 채취가 집중되었다. 맨살에서 느껴지는 안온감과 달콤함이 전해졌고 그 사이에 질 좋은 향수의 향도 섞여 있었다. 는개의 눈 화장은 엷은데도 화장을 진하게 한 것만큼 신비로웠다.


 “글쎄, 다 괜찮은 거 같은데 다 괜찮다고 하면 그런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니라고 할 테지."


 는개가 마동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 ‘드라마’가 있는데 공감이 갔어.”


 는개는 ‘드라마’라는 단편이 무슨 내용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럼 자신만의 세계에 침범하는 이들에게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축에 속하시겠네요?”


 “반드시 그렇다고 하는 건 아니야. 그것은 그저 글이니까. 그 당시에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잘 파헤쳐 글을 적었다는 생각에 놀라웠어. 체호프가 글을 쓰기 이전의 단편들은 좀 뭐랄까, 민담이나 우화적이고 손을 뻗어도 도달하지 못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체호프의 단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적었으니까.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현세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뉴스를 봐도 온통 드라마 같은 이야기밖에 없잖아.”


 는개는 뭐 그렇겠죠.라는 어설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사 내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는개는 카페에 잠깐 앉아 있었지만 벌써 여러 개의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마동은 딱 하나의 표정만 하고 있었다. 는개는 고전영화에서 볼법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의미로 미인이라 부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예쁘다와 매력적이다, 그 사이와 앞뒤의 고혹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티브이 속의 한결같은, 비슷하게 보이는 얼굴형을 지닌 여자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는개를 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는 자연스럽다고 하는 부분이 어떤 영역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노력과 꾸준함으로 미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회사의 남자 직원들이 호감을 가지는 여자였다. 클라이언트의 꿈을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법 전문지식도 상당했다. 아름답고 멋진 20대 중반의 여성이 자신의 일도 척척 해낸다는 건 남자들로 하여금 오르지 못할 나무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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