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1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03

11장 4일째 저녁

303.


 “와인은 다른 술처럼 마시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천천히 맛을 알아가면서 마시면 그렇게 취하지 않아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맙소사.


 는개는 횟감을 다듬어야 하는데 필요한 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주방용품 코너에서 세 자루의 칼을 구입했다. 마트에서의 비용은 그녀가 지불했다.


 는개는 들고 온 식품들을 주방에 일렬로 늘어트려 놓더니 마치 자기 집처럼 그것들을 손질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들고 온 칼과 칼꽂이를 잘 보이는 곳에 놔두더니 칼을 칼꽂이에 꽂아 두었다. 도마를 주방에 올리고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쥐돔과 아홉 동가리를 꺼내 놓았다. 는개는 마동이 듣게끔 혼자서 말을 하며 회를 뜨기 시작했다.


 “제가 원래 좌수도였어요. 그런데 좌수도의 칼은 너무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꾸준히 하지 못했어요. 저 이래 봬도 대학교 때 일식 자격증을 땄어요. 실은 동아리에 들었는데 그곳에서 선배의 아버지가 일식집 요리장이었어요. 한 번 놀러 갔는데 회를 다루는 솜씨에 그만 빠져들어 버렸어요. 횟감을 다듬는 기술을 가진 여자 요리장들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횟집에서 요리장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어요. 전공과는 상관없이 일식요리가 하고 싶었어요. 대학교 때는 누구나 그럴 때잖아요? 당신도 그랬죠?” 는개가 당시가 잠시 떠오르는지 고개를 약간 들고 상기하는 듯 보였다. 조명의 빛이 떨어지는 그녀의 옆선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일까.


 “난 그저 놀고 싶어서 그럴 궁리만 했어. 현실은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다 보내는 생활이었지만.” 마동은 당시를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소담스럽게 들렸다. 주방이 주방다워 보였다.


 “그런데 당신, 저를 본 적이 없어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일순 경직되었다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가 같은 대학교를 다니지는 않았고…….”


 “전혀.”


 “는개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잠시 다녔나?”


 “설마요.”


 마동은 잠시 생각을 했다. “어디서 마주쳤나?”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들고 온 생선을 다듬기 시작했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회를 뜨는데 그렇게 많은 칼의 종류가 있는지 몰랐어요. 또 칼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초벌로 포를 뜨는 칼이 따로 있어요. 뱃살 부위의 뼈를 바르는 칼, 그리고 회를 뜨는 칼, 지느러미와 머리 손질하는 칼이 다 따로 있더라구요. 굉장하죠. 그리고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순차적으로 칼을 사용해서 회를 뜨는 거예요. 어쩐지 회를 뜬다고 하니 겁이 나죠?”


 는개는 혼자서 웃었다.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신나 보였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서.


 마동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흥미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칼은 새것보다 잘 갈고 오랫동안 쓰던 칼이 좋은 건데 오늘은 어쩔 수 없죠. 이제 이 칼이 시간이 지나서 더 좋은 칼이 되길 바랄 뿐이죠.”


 마동은 는개가 들고 있는 그 칼이 다시 쓰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는개는 세 자루의 칼로 약한 비늘을 끌어내기 시작하더니 직각으로 칼을 내리쳐 생선의 대가리를 잘라 냈다. 눈꺼풀이 없는 쥐돔은 눈도 감지 못하고 머리가 몸에서 분리가 되어서 떨어져 나갔다. 마동은 멍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초현실화가의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