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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4. 2020

파티가 열려야 하는 마을

단편 소설


 오늘은 파티가 있는 날이다. 파티가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계절과 파티의 목적에 맞게 옷장에서 옷을 꺼내서 어떤 옷이 파티에 적당하게 어울리는지 죄다 꺼내서 입어보고 떠들썩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파티가 열리는 날은 지중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삶의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날이기도 했다. 마을의 여러 집에서 파티를 개최하는데 그중에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그 하나의 파티를 개최하게 되었다. 파티가 열리는 집에는 대략 열 가구나 열다섯 가구의 손님들이 찾아와서 각종 지중해식 음식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며 파티를 즐긴다.      


 파티가 열리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며 행복한 순간들이다. 파티가 열리는 집집마다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은 파티가 열리는 집으로 가서 마음껏 이야기를 하며 미래를 논의한다.


 나는 파티가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소년이다. 내 또래는 다 비슷하게 파티를 기다렸고 마을의 어른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파티에 입을 옷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옷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나 아빠는 나에게 파티에 맞는 옷을 입히려고 갖은 애를 썼다. 모두에게 파티는 그런 것이다.


 파티가 있는 날은 평소에 먹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파티가 없는 평소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 없이 지냈고 파티가 열리는 날에는 기운이 펄펄 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또래도 그러했고 마을 사람들 모두 그러했다. 지중해 음식은 나를, 또래를, 마을 사람들을 더욱 살아있게 해 주었다.


 파티가 열리는 오늘, 집에서는 노란 단 호박 수프처럼 보이는 당근 수프가 테이블에 깔릴 것이다. 당근 수프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신선한 야채와 오렌지가 새콤하고 달콤한 만다린 소스에 버무려진 샐러드가 있고 수프를 먹고 나면 수프가 끊임없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스페인의 전통 소시지가 쌓여있고 채소와 계란으로 만들어진 끼쉬가 나올 것이다. 또 다른 쪽에서는 발사믹 소스에 토마토와 참치가 샐러드에 버무려져 나오고 여자들은 와인과 상그리아를 나무통에서 떠 마실 것이다. 그런 모습은 갈매기가 바다 위를 날아다니듯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들이다.      


 어느 지역의 소고기인지는 모르지만 질 좋은 육질의 고기와 올리브, 양파, 계란을 다지고 그것을 감자 속을 깎아내 그 속에 넣은 요리를 나는 좋아했다. 마을의 어른들은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썰어서 먹기도 했고,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었고 곳곳에서 탄성과 함께 '위하여'를 외쳤다.


  축제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음식,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빠에야'였다. 이 마을에서는 파티가 아니면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해산물과 새우, 홍합, 오징어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빠에야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의 아이들은 빠에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파티의 행복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고 있었다.


 파티가 열려야만 마을은 살아있다는 의미가 적응이 되었다. 사람들은 마을과 접지된 전극 같은 모습을 하였고 서로는(마을 사람들) 받아들이는 것과 내뱉는 것의 조화가 묘하게 이루어졌다. 파티가 막을 내리면 그들은 잔뜩 흥에 겨운 얼굴을 하고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각자의 집으로 사라졌다. 대략 한 달에 네 번 정도 마을에는 파티가 열렸다.


 파티를 하면 모두들 흥에 겨워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떠들었다. 다만 과거의 이야기는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들었다. 파티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금기사항이었다. 내 또래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과거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은 필시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천 사백 여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은 축제의 분위기에 들어가고 파티가 있는 날에는 지중해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신나게 틀어놓고 마을 전체가 그 기분에 들썩였다. 파티가 끝이 나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서서히 그 기분이 가라앉아서 파티의 기운이 없어지려 할 때에는 터울이 길어지면 마을은 그 모습이 퇴색되어갔다. 마을은 그렇게 파티를 통해서 완전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티가 열리지 않으면 마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살아간다는 의미가 조금은 달라졌다.


 파티가 없는 평소에는 땅속으로 푹푹 꺼지는 기분을 느끼는 음식들만 잔뜩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이지 몇 달을 굶은, 또는 집 잃은 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는 오리도 키우고 여러 가지 가축을 키웠지만 그들이 사육한 가축을 직접 잡거나 먹어 본 기억은 없다. 가축은 마을의 뒤편 들판에서 방목을 하고 있었으며 가축을 돌보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선출한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그 일을 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전문가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것이 마을의 목표 중에 하나였고 마을의 이장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지금은 가축을 키우는 것에 있어서 대변을 보고 밑을 닦는 것만큼 숙달되었고 마을 이장님에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내 또래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파티가 열리지 않고 공백이 2주일이 넘어가면 그 떠들썩한 분위기가 마을에서 사라졌다. 여름이 끝나는 구월부터 십일월까지는 파티가 그렇게 많지 않다. 파티가 열리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철새가 때가 되면 움막으로 찾아오듯 파티는 그렇게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다. 마을에 열리는 파티는 산발적이기 때문에 마을의 사람들 역시 하나의 파티가 끝이 나고 또다시 돌아오는 파티가 언제 열리는지 알지 못했고 파티가 뜸해지면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했다.


 내가 마을에 살면서 파티가 두 달 동안 열리지 않은 나날이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옷을 여러 날 입고 일에 매달렸고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던 가축들은 그저 앉아있거나 누워있었고 당연히 불어야 하는 바람마저 불지 않았다.      


 마을의 도로에 피어있는 꽃들과 나무들은 단지 하나의 어떠한 형태만 지니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모습이었고 느닷없이 가을이 들이닥쳐서 마을 주위의 산은 온통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의 기운이 몰아쳐 오는 날에는 마을의 중간에 있는 연못의 물도 거뭇하게 변했다. 연못의 오리들은 몇 가닥의 털만 남겨놓고 연못을 벗어나서 마을의 제일 가장자리인 숲으로 넘어가서 서로 대들고 있었다. 오리들은 서로의 털을 뽑아 가면서 상처를 냈다. 서로를 보며 신경질을 잔뜩 쏟아내고 상대의 털을 뽑아 대는 것이다. 오리 중에 한 마리가 죽어야 싸움이 끝날 것처럼 치열했다. 오리들의 그러 모습을 보면서도 마을의 누구 하나 오리들의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눈으로 좇기만 하며 텅 빈 사람처럼 지냈다.


 마을은 파티가 열리지 않음으로 해서 공기를 한층 더 무겁고 만들었고 마을을 무섭게 만들었다. 내가 마을의 어귀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면 다른 날 보다 숨이 더 차올랐다. 힘들었다. 마을 자체에 산소가 희박해져 가는 것이다. 생기 없는 생선만 며칠 째 먹은 고양이처럼 영민함이라고는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티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이장을 비롯한 어른들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났고 점심시간이 되면 제시간에 식사를 했으며 집집마다 주어지거나 맡은 일을 해치우고 저녁에는 식어빠진, 맛이 없는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마을은 불완전한 완전무결인 하나의 군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고도 없었으며 술주정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살하는 사람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는 이들도 없었다. 작은 학교에서도 수업 도중에 조는 아이도 없었고 아이들끼리 왕따를 시키거나 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무표정하게 수업을 했고, 수업 중에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도 없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하지도 않았고 옳은 결과를 위한 어떠한 선택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 중간에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마을 주민은 밭이나 집집마다 놓여있는 툇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공들여 깎거나 하늘에 날아가는 메마른 새를 쳐다볼 뿐이었다. 대화를 하는 일도 드물었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없었다. 2세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구덩이 속에서 사는 거와 흡사했다. 내 나이가 어려서 그럴지도 몰랐지만 파티의 터울이 심한 공백의 날에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비참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도 파티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이장과 마을을 관장하는 몇몇의 어른들뿐이었고 나머지는 몰랐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을의 주민은 이장을 밑으로 해서 오백 명 단위의 장이 다섯 명이 있었다. 이장을 비롯한 그 다섯 명의 장들이 마을 사람들을 관리하며 파티를 하달받고 지중해 음식과 고기를 일정한 장소에서 받아 마을의 청년들을 시켜 운반하여 마을에서 파티를 열었으며 파티는 마을의 주민 모두가 자신의 집에서 각각 돌아가면서 열게 된다.


 두 달여 동안 파티가 열리지 않으면 마을은 완벽한 고요의 서늘한 냉동고 같은, 빙하기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마을은 살아있는 거대한 고대 동물의 화석처럼 단단하고 무척이나 차가워져서 마을의 거리를 거닐 다가는 마음이 전부 말라버려 바람에 재가 될 것만 같았고 넘어지면 다리가 그대로 부러 질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언어는 파티라는 의식의 끈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시냅스 같은 것이라서 파티가 열리는 날에는 마을 사람들의 의식은 불이 들어온 전구처럼 반짝거리며 서로의 반응에도 적극적이었다. 마을 사람들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보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파티가 열리는 날이 다가와 파티날짜를 통보받고 준비하는 날에는 초콜릿 상점에도 사람들이 북적이며 파티에 쓸 초콜릿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목욕탕은 모처럼만에 수증기를 한껏 피워 올리며 남자들은 각각 집안의 안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파티가 끝이 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씩 마모되어 간다. 스무 명이던 초콜릿 상점의 손님들도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주인만이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파티는 하나의 개념적 웅덩이 같은 것이라 그 웅덩이 속으로 서로의 개체를 내던져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마을은 하나의 완전한 의체처럼 파티를 통해서 살아나고 파티를 통해서 숨을 쉬고 파티에 의해 자존감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파티가 열리지 않는 날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마을이라는 하나의 유기체적 관념은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기운을 조금씩 앗아갔다.


 파티란 그런 것이었다. 마을은 87%의 파티와 13%의 그 이외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3%에는 파티에 필요한 재료와 운반하는 시간과 수고에 속하는 것들이 차지했다.


 파티가 열리지 않으면 마을은 모든 것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의 숨결도 머릿속의 생각도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빨아먹었다. 대기 중의 공기에서도 떠들썩하고 유기적인 부분은 모두 흡수해 버렸다. 가끔씩 장작 패는 소리가 터무니없이 크게 들리기도 했다. 크게 들렸지만 정작 장작의 무게감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소리였다.


  며칠 전 마을의 몇 집 밖에 되지 않았던 의사 부부가 없어졌다. 마을을 빠져나갔는지 인사도 없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나는 그 의사 아저씨와 부인을 좋아했는데 인사도 없이 가버린 것이 못내 서운하고 억울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인체의 신비에 대해서 말해주며 인체는, 신비에 도달하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도리와 의가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인문학을 먼저 알아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했다. 그는 그 인문학의 기본인 도덕적 인사법을 나에게 강조했다.      


 그랬던 의사가 너무나 소홀히 그것을 어긴 후, 나에게 일말의 말도 없이, 어딘가로 가버린 것이다. 사라지기 전날 나는 우연찮게 의사가 마을 이장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나는 의사 아저씨에게 인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 댁에 들어가려는 참에 그들이 나누던 대화를 엿들었다.     


 "왜 파티 같은걸 열어야만 우리들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먹일 수가 있는 겁니까? 이건 공정치 못합니다. 제가 가서 말을 해보겠습니다. 파티가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공백이 심해지면 마을 사람들은 점점 존재감을 잃어갑니다." 의사는 마을 이장에게 강력한 투로 말을 했다. 하지만 큰 소리는 아니었다. 마을 이장은 종이에 얼굴을 베인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름이 태고의 흔적처럼 진한 이장의 얼굴에 비장함이 드러났다.


 "그것은 정해져 있는 일이야. 파티는 열려야만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은가. 파티가 열리고 나면 당신의 질문에는 더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어지네. 자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옳지 못한 행위라네. 자네가 더 잘 알잖은가."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아이들이 계속 태어납니다. 벌써 마을 인구가 이천 명이 넘었습니다."


 나는 그런 대화를 엿듣고는 의사 아저씨의 이야기에 조금은 수긍을 했다. 파티는 마을 사람들, 본인들이 직접 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잠시 했었다. 나는 그날 의사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 의사 아저씨와 이장님과의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의사 아저씨와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떠났을 모양이었다.


 나에게, 잘 있어.라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기이한 것은 의사 부부가 떠나고 며칠이 지나면 그 의사 부부가 사는 집과 사람들을 진료하는 곳에 또 다른 의사 부부가 와서 그 자리를 메웠다. 마을 사람들의 수는 예전에 비해서 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체로 이천 사백 명 정도를 꾸준하게 유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보면 사라지는 사람들이나 없어진 아이들의 공백에 눈에 띄었다.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 중에서도 보이지 않게 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없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말을 아꼈다. 어른들은 집집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단단히 시켰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누구 하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저 마을을 떠났다고만 들었다. 평화로운 마을을 떠나서 어딜 간 것일까.


 마을에서 떠난 사람들의 흔적은 떠남으로 깨끗하게 지워졌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함구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사라지는 사람 속에 자신이 속해 있지 않아서, 자신의 가족이 속해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뒤로 숨긴 채 말이다.


 학교에서 없어진 친구의 책상에는 곧, 이내 다른 아이가 앉아서 수업을 들었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으며 파티가 열리는 날에는 그 아이의 가족과 인사를 하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마을의 한편에는 마을의 주민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집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는 마을의 이장과 이장 밑의 각 장들만 출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이 그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파티가 열리는 날의 며칠 전에는 항상 그 집에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 가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거대한 철조망이 사방으로 쳐져있었고 간간이 마을의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도 했다. 보초를 서는 청년들은 도무지 웃지 않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섞지 않았다. 청년들의 눈은 마치 밀랍인형의 눈처럼 건조했으며 꼿꼿한 자세는 몸속에 무엇을 박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보초를 서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파티가 열리는 며칠 동안 그렇게 청년들이 돌아가며 그 집의 보초를 서는 것이다. 무표정한 채로, 도저히 옆집의 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모습이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게 된 경위는 그 철조망에 걸쇠가 잠겨 있지 않아서였다.


 이제 오늘 저녁이면 우리 집을 비롯한 마을의 여러 집에서 파티를 한다. 겨울이 마을에 성큼 다가온 날의 중간에 마을 사람들이 개최하는 파티는 축제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이 마을의 축제는 겨울에 그 진가를 발휘했다. 겨울에 잘 먹을 수 없는 지중해식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겨있지 않은 열쇠를 보고 그 집 안이 궁금했다. 내내 저 집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내가 먼저 가보고 아이들에게 말해줘야겠다. 마을 사람들은 자유로웠지만 왜 이 집만은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걸까.


 호기심의 발로는 강한 의구심으로 바뀌어서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철조망의 문을 조금 밀어젖히니 문이 손쉽게 열렸다. 나는 다시 그 문을 닫고 잔디 사이에 나 있는 돌길을 한발 한발 밟으며 그 집으로 다가갔다. 집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연약했고 보기 드물게 희미한 푸른빛이 그 집에서 새 나오고 있었다.


  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와 떨어지는 정지한 공간 속에는 먼지들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보였다. 이곳의 시간은 이 집 밖에 있는 마을 속 시간의 흐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 집에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은 어딘가 냄새나고 구부러져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구기고 접어서 버려버린 종이의 시간처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마당은 대단히 컸다. 마당의 중앙에 집이 오롯이 서 있었고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집이다. 집은 마을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지붕이 버섯모양이고 일반 집보다는 큰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창문이 없었다. 아니, 창문이 있지만 유리창이 아니라 보드나 나무판으로 가려져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눈이 뿌옇게 말라있는 것과 흡사했다.


 나는 집의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그 문 역시 손쉽게 열렸다. 이런 집에 왜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하나 싶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구부러지고 냄새나는 시간이 도사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고기의 냄새가 가득했다. 생고기의 비린내가 확 풍겼다.      


 생고기의 냄새.      


 이것이 죽어버린 시간의 냄새였다. 고기를 달궈진 숯에서 굽는다거나 기름이 튀긴다거나 하는 냄새가 아닌 생육의 핏빛 가득한 냄새였다. 나는 사실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생고기의 냄새를 처음 맡아봤다. 생고기의 냄새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집안은 어두웠고 창문은 집 안에서 두꺼운 종이나 나무판으로 전부 막아 놓았고 막아놓은 틈 사이로 아주 얇고 미약한 빛이 들어와 집안의 바닥에 닿아 부서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제법 있었다. 너무 많지도 않았고 없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아 파티가 열리는 며칠 동안에는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다가 파티가 끝이 나면 바닥을 청소하는 모양이었다. 바닥은 공기와는 또 다른 먼지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발자국은 그 먼지 위에 또렷하게 존재를 표시했다. 여러 발자국 중에 작은 발자국이 보였다. 저것은 여자의 발자국이다.


 어떤 여자가 이 집에 들어왔을까.


 이 집은 뭐 하는 곳일까. 파티를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는 것일까.


 이장과 마을의 장들이 모여 마을의 일을 의논하는 곳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마을의 일은 파티 때마다 그 집에서 이장과 장들은 돌아가면서 마을의 일을 논의하는 모습을 왕왕 보았다.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장소라고 보기에는 너무 음침하고 생육의 비린내가 너무 났다.


 거실 같은 곳에서는 문이 네 개가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하나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돼지나 소의 사체가 비닐에 휩싸여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 방은 유난히 서늘했는데 아마도 냉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살가죽이 벗겨진 돼지와 소를 보았다. 그것들이 들판에서 뛰어놀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매달려있는 모습이 내 마음으로 틈입해왔다. 들판이나 축사에서 킁킁 거리며 살아있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광경이었다.      


 잘 설명할 길이 없는 부분이다. 정교한 예술작품 같았지만 징그러웠다. 나는 한참 동안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가죽이 벗겨진 채 올챙이배 같은 모습을 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움직임도 없고 살덩어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져서 바닥은 그 피를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깃덩어리가 내뿜는 냄새는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이 냄새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두렵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다. 한없이 마땅한 냄새였다. 무섭지 않아. 내가 무서운 건 파티가 열리지 않는 마을이었다. 상상을 하면 할수록 마을은 나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질문을 했다. 행복하냐고.


 가축의 시체는 두렵다거나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방에서 또 다른 문을 발견하고 그 문을 열었다. 다른 방으로 연결된 방에는 각종 해산물이 있었다. 돼지와 소의 시체가 주렁주렁 달려있던 방의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비린내가 섞인 짭조름한 냄새였다. 어른들에게 말로만 듣던 바다라는 곳의 냄새인가.    


 해산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방도 돼지와 소가 있던 방보다 더 커 보였다. 오징어가 무더기로 보이고 새우도 수천 마리가 되어 보였다. 조개와 홍합 같은 조개도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른들이 오줌을 누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빠에야의 완성된 모습이 눈에 선해서 침치 꼴깍 넘어갔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방안에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대번에 생고기에서 뿜어져 나왔던 피 비린내는 깨끗하게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해산물이 수북이 쌓인 방에서 작은 문이 있는 앞까지 왔다. 이 문은 어떤 방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문틈으로 아주 희미한 푸른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 빛이 집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 빛이 분명하게 푸른 빛깔을 띠었던 것을 나는 보았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하지만 그 손잡이는 앞서 두 개의 문에 달린 손잡이에 비해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양손으로 힘을 한껏 주어 돌렸다. 문 여는 소리가 크게 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주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손잡이는 힘겹게 딸깍 하면서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안은 전체적인 미미한 푸른색의 불빛이 아지랑이 같은 연기처럼 하늘하늘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푸른 불빛은 천천히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이더니 방안을 온통 푸른빛으로 강하게 감쌌다. 푸르고 투명한 불빛에서 시선을 돌려 방안의 모습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무엇을 경험한 것처럼- 길을 걸어가다 땅속에서 코뿔소가 천천히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그리고 코뿔소가 땅 위에서 자신의 몸을 씹어 먹는 모습을 목격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내 몸 안의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고 무너진 한쪽의 바닥으로 넘어지는 현기증을 느꼈다.


 방에는 가구나 붙박이 벽장도 없었고, 책상이나 테이블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저 방이라는 의미만 가득한 공간에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그 수많은 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푸른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푸른빛은 마치 살아있는 엑토플라즘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기도 했다.     


 내 의식은 그 장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의지를 가지고 눈을 떼지 않는 한 좀처럼 그 모습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뼈대는 굵은 것부터, 가는 뼈대, 크고 작은 뼈대까지 소머리 뼈와 돼지머리 모양의 뼈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작거나 큰 동물들의 머리뼈까지 있었고 그들은 각각의 소르라침과 서글픔을 머금고 수북이 쌓여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분리된 각각의 뼈들은 어디 머리뼈에 맞고, 어디 다리뼈에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었다. 비슷한 구슬을 바닥에 확 쏟아부은 다음 자신의 구슬을 찾는 것만큼 힘겨운 것이었다. 몇 해 동안 죽어나간 이름도 모르는 가축들과 동물들의 뼈가 이곳, 이 집의 이 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뼈대는 아래에서부터 낡을 대로 낡아서 퇴색한 색을 띠고 있었고 위로 올라갈수록 뼈대의 색,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뼈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내 눈은 이제 글을 배운 할아버지가 책 속의 글을 쳐다보는 눈초리로 어떠한 뼈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뼈는 해골이었다. 인간의 머리통 뼈였다. 수많은 뼈대 속에 사람의 해골이 보였다.   


 두 눈이 있는 자리는 퀭한 듯 구멍이 뚫려 있었고 벌어진 입은 허공을 향해 무슨 하소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소연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두려움이었고 공포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다 이 꼴이 되었는지 해골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다른 뼈에서 나오는 푸른빛과는 달랐다. 피어오르는 빛은 더욱 자조적이었고 진한 푸른 빛깔이 가까웠다. 해골은 입을 벌리고 있었고 벌어진 입안으로 보이는 치아의 3개는 금니로, 내가 의사 아저씨에게 왜 당신은 이빨에 색이 다른 이빨이 3개나 됩니까,라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의사 아저씨는 어딘가로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이렇게 해골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더미 속에는 의사 아저씨의 부인도 있을 것이고 사라졌던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휘청하더니 다리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나는 예기치 못한 시점에 들어와서 예기치 못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옳지 못한 선택으로 인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작은 창으로 바람이 와서 부딪혔다. 바람을 따라서 마을의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는 엄마와 아빠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소리에는 행복함이 묻어났다.      


 완전무결한 마을에서의 파티는 그런 것이다. 의사 아저씨의 해골을 향해 손을 천천히 뻗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면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의사 아저씨의 머리통을 만져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인사도 없이 가버린 의사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걸까. 창틈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축제적 떠들썩함이 더욱 크게 들렸다. 내 손이 의사 아저씨의 해골에 닿으려는 찰나 나는 누군가의 팔에 낚여 채였다.


 나는 완강히 반항할 기운이나 마음의 일렁임조차 들지 않았다. 공중으로 부웅 하며 들려진 내 눈에 해골과 뼈대들이 바닥이 아닌 벽면에 쌓여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삐딱하게 보였다. 삐딱하게 보이는 뼈대의 산은 현실감이 떨어지고 추상적이었다.      


 나를 낚아챈 그 누군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향수의 향이 옅게 퍼져 나왔고 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장화처럼 보이는 부츠를 신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버클이 굵은 허리띠와 그 허리띠의 중간에는 권총이 한 자루 꽂혀있었다.


 나는 지금 어두운 지하통로를 걸어가고 있다. 촛불이 그 지하통로의 벽면에 등차 적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고 불빛은 미약했다.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되어있고 나의 양손은 밧줄에 묶여 있어서 묶인 부분이 까끌까끌하고 따가웠다. 이곳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파티 준비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파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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