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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04

11장 4일째 저녁

304.


 그림 속의 뒤죽박죽 계단에 서 있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나는 뒤집혀 있다. 뒤집어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에 나는 다시 계단의 이상한 지점에 서 있었다. 나는 왜 여기 서 있지? 어떻게 된 일이지?


 그곳에 있다는 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는 거예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그곳에 있다는 것은 죽음이에요.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진짜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그 모습으로 살기 싫을 뿐인걸요. 당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그곳에 없다는 거예요.     



 쥐돔의 잘려나간 대가리를 보고 있으니 어딘가로 떨어지는 마음이 깊어졌다. 마동은 언젠가 아주 어릴 때 어딘지도 모를 방파제에서 참치 인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참치 인간은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로 사람처럼 방파제에 서 있었다. 마동은 그것이 인형이라고 생각했지만 참치 인간은 천천히 방파제를 돌아다니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은 참치 인간을 본 사실을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참치 인간은 당시에 마동의 키보다 조금 작았으며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마동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대화를 했다.


 참치 인간을 만났을 때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마동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고약한 누군가가 긴 줄의 시간의 매듭을 지어서 짧게 만들어 버리거나 혹은 긴 줄을 잘라버리고 그것을 다시 서로 묶어 버렸다. 참치 인간은 방파제에 서서 바다의 냄새에 이물감이 섞인 냄새가 난다고 했다.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확대되지 못하고 축소되고 축소되고 있었다. 축소되고 반으로 나뉘고 축소되고 또 축소되고. 참치 인간은 시간의 퇴보 속에서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지내왔다.


 참치 인간은 방파제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바다는 바다로서 운명체가 존재하지만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무섭고 거센 강물도 바다 앞에서 고요해지고 초라해지는 거야. 바다는 그런 존재지’


 참치 인간은 마동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린 마동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100년 전에도 그리고 100년 후에도 흐름이라는 것을 거슬러 갈 수는 없어. 시간의 흐름도, 물의 흐름도, 구름의 흐름도 바꿀 수는 없어. 그 어떤 흐름도 바꿀 수는 없지’ 참치 인간이 말했다. 그리고 참치 인간은 마동에게 다시 만나자, 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은 사람들이 모르는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참치가 살고 있다가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러 올라온다. 그 후로는 참치 인간을 만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동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았고 마동은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도 잘 나갈 수 없었다. 마동도 참치 인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참치 인간은 점차 잊혀갔다.


 는개가 잘라낸 쥐돔의 눈을 보니 참치 인간이 떠올랐다. 는개는 등지느러미 부분에 칼을 넣더니 슥삭슥삭 뼈와 살을 분리해냈다. 빠른 손놀림이었고 익숙하게 뼈를 발라냈다. 마동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저 가늘고 아름답고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물고기의 거친 뼈를 발라내며 회를 뜨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 놀랍고 사실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게 초보는 정말 힘들어요. 저도 오랜만에 하는 거라 잘 안 발라져요.” 는개는 공을 들인 손톱의 끝 부분이 망가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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