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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05

11장 4일째 저녁

305.


 “칼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네요.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손이 베일 수 있어요. 회칼에 손이 베이면 그날은 끝인 거죠. 자, 칼집을 넣고 나서 뼈와 살을 분리해 낼 때 주의 사항은 칼을 이렇게, 자 보세요, 이렇게 수평에 가깝게 뉘이되 칼끝 부분은 살짝 아랫방향으로 틀어서 척추 뼈를 문지르면서 이렇게, 보고 계시죠? 슥슥 긁어줘야 하는 거예요.”


 는개는 강습을 받는 초보자에게 강연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하는 말은 로켓의 원리와 재료 분석학을 듣는 것만큼 어려웠지만 마동은 입을 다물고 굳게 있었다. 회를 뜨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로운 마술이 자꾸 펼쳐졌다. 근간에 이렇게 새로운 재미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동반된 자괴감은 점점 깊어졌다. 자괴감은 의식의 중심부부터 점점 부풀어 올라 모습이 뚜렷해졌다. 마동의 마음속 수면을 더 깊은 심연의 끝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확실성은 자괴라는 덩어리를 크게 만들어 수면 위로 떠올리고 있었다. 는개의 강의는 좋았지만 쥐돔의 눈알과 마주칠수록 괴로웠다. 마동은 머리를 흔들었다. 마동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자괴감에 머리를 흔드는 일뿐이었다.


 “당신, 잘 보고 있나요?” 는개는 회를 뜨는 데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서 설명을 듣는 학생처럼 잘 듣고 있어.”


 는개는 마동의 말을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들어서 마동을 한 번 바라보았다. 마동은 그녀에게 눈으로 잘 보고 있고 귀로는 잘 듣고 있다는 눈빛과 손짓을 했다. 거침없는 는개의 손놀림 속에서도 슬픈 분위기가 있었다. 미미한 슬픔은 는개가 능숙하게 뼈를 발라낼수록 항체를 만들어 내어 계속 잔존했다. 그 속에는 잊히지 않는 무엇을 잊으려 하는 애처로움도 엿보였다. 는개는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마동은 그녀의 모습을 놓치기 싫어서 꼼꼼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도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는개는 법학을 전공해서 전혀 상관없는 이 일에 왜 뛰어들었을까.


 “그렇게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아요. 좋은 대학교의 법학도 출신으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은 말아주세요. 사장님에게도 직원들에게도 그동안 그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알잖아요?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쏟아지던 그 질문들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야, 는개는(여자들은,으로 말하려다가 는개로 바꾸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잘 알고 있지?”


 “당신 얼굴에 쓰여 있잖아요.”


 “재미없군.”


 “그동안 당신에게 배운 것입니다.”


 평범한 대화 속에 마법은 숨어있었다. 스쳐가는 이야기 속에 미소가 마동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번졌다. 그녀는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능력도 지녔다. 이 세상에는 많은 대화가 존재한다. 그 대화 속에는 회사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다투기도 하고 나라 간의 우호관계가 삐거덕거리게 하는 언어도 있다. 어렵게 쌓아 올린 관계도 대화에서 한순간 파괴되기도 한다. 시끄럽던 도시가 침묵에 휩싸이게 만들어 버리는 대화도 존재한다. 존재하는 수많은 대화중에 마동은 는개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는개가 실재해있기 때문에 대화가 즐거운 것이다. 는개도 평소보다 즐거워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무엇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 무엇은 두 사람을 연결해주고 있기에 함께 즐거워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즐겁다고 느끼는 대화는 얼마나 이어질까.


 마동은 문득 죽음이 두렵게 느껴졌다. 실체가 있는 꿈틀거리는 벌레가 가득 들어찬 웅덩이에 빠져서 입안으로 벌레가 기어들어와 숨이 막히며 죽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두려움은 죽음을 그런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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