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2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9

11장 4일째 저녁

319.


 “오줌을 지렸어요. 미취학 아동이 아닌 사람이 오줌을 지릴 때는 만취가 되었거나 아니면 굉장히 놀랐거나 둘 중 하나겠죠. 전 다시 한번 누른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남자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어요. 왜 나여야만 하는가. 새아빠라는 남자에게 겁탈당하는 경험을 겪지는 않았지만 전 그동안 노리개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심한 고충을 겪었다구요. 어떠한 선을 넘지 않고 매일 지속적으로 그 벌레 같은 손길을 느껴야 했으니까요. 매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야 했어요. 완력이 강한 세 남자에게 둘러싸여 전 너무 겁이 났어요. 너무 무서웠다구요.”


 는개의 어깨가 움직였다. 와인 잔을 쥐고 있던 마동의 손은 와인 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는개의 손을 잡았다. 는개가 미세하게 움찔했지만 그대로 있었다. 잡은 손은 작고 따뜻했다. 는개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에서 아픔이 묻어났다.


 “경찰도 사람들도 모두가 미웠어요. 심지어는 개들도 미웠어요. 소설 속 비 맞은 개처럼 한 번 짖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뒤편에서 누군가 내가 떨어뜨린 책을 들고 서 있었어요. 고등학생이었죠. 그 학생은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마른 체형의 학생은 한 손에 내 책을 들고 골목 안까지 왔어요. 그리고 내가 당하고 있는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어요. 그 남학생은 길 잃은 숲 속의 그레텔처럼 무서워했어요. 두려웠지만 작은 소리로 그들에게 나를 놓아주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조용히 그 남학생에게 골목을 벗어나라고 경고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죽이고 그 남학생도 죽인다고 협박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진심 같았어요. 아니 진심이었어요. 그들은 사채업자로 사람들의 목숨을 노끈 끊듯이 끊어 놓기도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남학생은 점점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어요. 발걸음이 아주 느렸어요. 발이 바닥에 붙어 있는 듯 질질 끌며 말이에요. 그런 걸음걸이로 나에게 오는 것이었어요. 전 그 남학생이 걱정되었지만 남학생이 소리를 질러주기를 바랐어요. 그러면 주택에서 사람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거예요.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 남학생은 소리 지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떨리는 얼굴을 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어요. 칼을 든 남자가 남학생에게 웃으며 빨리 꺼지라고 했지만 계속 다가오는 남학생을 보고 얼굴 표정이 바뀌었어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히고 나를 협박하던 지옥 같은 얼굴로 변했어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추하고 더러운 얼굴을 한 괴물 같이 말이에요. 전 정말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무섭게 변할 수 있을까. 전 공포에 떨기만 했어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어요. 마치 유체 이탈한 것처럼 몸은 전혀 미동이 없고 내 웃음기가 걷히고 칼을 들고 다가오는 남학생 쪽으로 갔어요. 나는 입이 떨려서 병아리가 내는 작은 소리로 도망가라고 했는데 그때 얼굴에 무엇인가가 가격 당하는 기분이 쿵 하며 들었어요. 정신이 없어서 그저 벽에 머리를 박는 느낌이었는데 다리와 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내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어요. 전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 아일뿐인데 말이에요. 내가 그 남자에게 얼굴을 맞았을 때 남학생이 멈칫하며 다가오는 것을 잠시 멈췄어요.


 남학생의 얼굴은 무서움에 떨고 있었지만 나에게 책을 주려고 점점 다가왔어요. 책을 내밀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남학생은 오로지 나에게 책을 건네주기 위해, 그 하나를 위해 다가왔어요.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이에요. 그 이외에 그 남학생에게서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책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그들에게 나를 놔주라고 말했어요. 칼을 든 사내가 남학생 앞으로 가서 칼로 위협을 했어요. ‘이 꼬맹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이 칼이 배에 들어가면 뱃가죽이 칼을 꽉 감싸 안아, 그러면 칼을 배에서 빼려고 해도 안 빠지는 거야, 넌 곧 죽게 되겠지, 신음을 토하며 아파하다가 말이야’라며 남자는 겁먹은 남학생을 위협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더군요. 후에 알았지만 주택가의 사람들은 커튼을 치고 창문을 통해서 그저 바라보고 있었더군요. 사내 세 명이 여중생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뒤의 일이 궁금해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창문의 틈새로 바라보기만 했어요. 전부 정신병자 같았어요. 그 속에서 남학생은 홀로 나에게 다가왔어요.”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고여있는지 마동은 는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알 수 없었다.


 “전 얼굴이 너무 아팠어요. 맞은 곳이 멍이 드는 느낌이 들더군요. 칼을 든 사내가 칼을 휘두르면 남학생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아서 나는 무서움에 떨었어요. 극심한 오한이 들더군요. 칼을 든 사내는 남학생 앞에서 칼을 눈높이로 들었어요. 전 심장이 터질 뻔했어요. 남학생에게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어요. 남학생이 가까이 올수록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두려워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너무 무서우면 사람은 우니까요. 그런데 남학생은 무서워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어요. 그것은……”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