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위의 사진과 밑의 사진의 시간차가 좀 있다. 스파이디들이 좀 늘었고 히데의 피규어도 있다.
우리는 하릴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걸었다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적고 있었는데 누가(매일 보지만 그저 인사만 하는 옷가게 여자 사장님) 와서 나에게 참 특이하다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데도 택배가 옷가게로 배달되어서 옷가게 여자 주인이 들고 왔다. 잘 모르겠지만 글 적느라 주위의 소음에 소홀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넌 참 특이하구나, 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특이하다는 말은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성인이(위의 사진처럼) 되어서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도 장난감, 프라모델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가난해도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어떻게든 사주려고 했다. 나는 어렸지만 비싸고 좋은 장난감은 조르지 않았다.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이 있는, 문방구에서 파는 프라모델을 좋아했다. 앉아서 프라모델을 만드는 그 시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러고 있으면 아버지가 같이 앉아서 프라모델 만들기를 함께 했다. 그 어린 시절에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라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와 함께 문방구에 가서 장난감을 고르고 그것을 손에 쥐고 오면서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집에 와서 볕이 드는 곳에 앉아서 같이 장난감을 만든다. 옆에서 동생이 얌전하게 앉아 있고 어머니는 떡국 같은 것을 끓이고 있다. 장난감을 만들다가 내가 만들지 못하는 부분은 아버지가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어릴 때에도 집에 있는 찬장에 장난감이 가득했는데 요즘도 진열장에 피규어가 가득하다. 진열장 두 개가 더 있는데 그곳에도 피규어가 있고 옷장 위에는 아직 뜯지 않은 피규어도 좀 더 있다. 어린 시절에도 아이들이 집에 그렇게 놀러를 왔다. 너는 참 특이하다면서. 어른이 되어서 진열장에 피규어가 가득하니 역시 특이하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되었다.
피규어는 내가 좋아했던 만화의 주인공들 위주의 피규어다. 코난, 라나, 포비나 빨강머리 앤, 은하철도 999,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 같은 주인공의 피규어가 아주 좋다. 이런 피규어는 이제 잘 구할 수도 없다. 그리고 꾸준하게 좋아하는 건 역시 스파이디들이다. 스파이더맨이 좋다. 다른 슈퍼파워를 지닌 주인공들에 비해 좀 떨어지는,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비행기를 들지도 못하지만 늘 곁에 있어서, 뭐 그런 스파이더맨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슈퍼맨보다 더 좋아한 것 같았다.
가끔 코난을 좋아하는 어른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사실 미래소년 코난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드러나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나 인더스트리아의 거대한 음모나 그런 이야기들. 포비는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는 절대 주지 않는 도마뱀 꼬리를 준다던가, 덕분에 라나는 기절을 하기도 하고. 또 은하철도 999는 더 난해하고 심오하지만 그걸 나눌 수 있는 곳은 인터넷밖에 없다. '빨강머리 앤'은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으로 시리즈 3까지 나왔는데 참 재미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길다면 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순전히 개인적인 방법이지만) '빨강머리 앤'을 두 편 보고 소설을 읽는다. 그러면 두 편 정도가 소설 한 3, 40페이지 정도를 차지한다. 대사도 거의 똑같기 때문에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 그림의 작화가 마음에 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는, 장면 설정이나 레이아웃을 젊은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맡았다. 그 외 당시 최고의 작화 화가들이 엄마 찾아 삼만리에 매달렸다 총 52화로 마르코의 엄마 찾아가는 길은 험하고 고단하고 지치고 힘들지만 울며 웃으며 엄마를 찾으러 간다. 마르코의 엄마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정부 일을 하러 갔는데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머나먼 길, 삼만리라는 어마어마한 길을 엄마 찾아 혈혈단신으로 가게 된다. 벌써부터 눈시울이 따가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시대 상황을 찾아보면 마르코의 엄마가 왜 그 먼 곳까지 갔는지 알게 된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는 밀을 수출하는 신흥 부국이었다. 때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이민자들을 오냐오냐하며 받아들였다. 마르코가 얼마나 긴 거리를 가느냐 하면 1880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발하여 마르세유를 거쳐 바르셀로나, 말라가, 다카르를 지나 대서양을 종단한다. 그리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지나 바이아블랑카에서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사리오, 코르도바, 투쿠만에서 결국 엄마를 만난다. 엄마를 만날 때 정말 눈물이 철철 난다.
그리고 마르코는 반대 여정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마르코가 물어물어 힘겹게 엄마가 있는 집에 가면 이사를 가 버리고, 또 미칠 듯 엄마가 있는 집에 가면, 어떡해? 또 이사를 가버렸다. 또 찾아가면 일주일만 일찍 오지, 같은 말만 듣는다. 얼어 죽을 놈의 이사. 이렇게 마르코가 다닌 거리가 25,910 킬로미터다. 지구 둘레의 70%를 돌아다녔다. 조그마한 몸으로. 마르코의 여정도 딱하지만 시작하는 마르코 주제가가 '시' 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끝 부분에서 혈관 터질 뻔하지만 이 노래는 한 편의 장엄한 시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길 삼만리
바람아 구름아 엄마 소식 전해 다오
엄마가 계신 곳 예가 거긴 가
엄마 보고 싶어 빨리 돌아오세요
아아아 외로운 길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삼만리
삼만 리는 끝이 없다. 정말 끝없다.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 길을 읽어봐도 맨발로 전라도까지 가는 길도 험난하고 끝이 없어 문둥이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가 끝에는 하나만 남는데, 마르코는 삼만 리를 엄마가 보고 싶어 지치지 않고 간다. 마르코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뱃사람, 철도원, 서커스 단원,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소매치기 등 인간 군상은 죄다 만난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마르코의 이야기는 여행하는 로드무비 식의 형식이 아니라 마르코라는 어린아이의 성장기다. 그래서 이 만화를 유심이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만화 주제곡 주제에 산 설고, 물길 설다는 표현도 참 애틋하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은 울먹이며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이 가사는 당시에 너무 슬퍼서 개사가 되어서 다시 불렸다. 요컨대 ‘엄마가 계신 곳 내가 거기 있다’로 바뀌었다. 주제가는 두 곡이다. 이 슬픈 버전이 있고 빠른 버전으로 한 곡이 더 있다. 원작은 이탈리아의 아동작가 에드몬드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에 실려있던 단편 ‘아페 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인데 그걸 주욱 늘려서 52부작으로 만들었고 엄마 찾아 삼만리는 극장 애니메이션 편도 있다. 극장판도 좋으니 보기 바람.
라고 이야기를 하면 참 특이하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요즘(근 10년 정도)도 그 소리를 듣게 되는 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조깅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정도의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 조깅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 대단하구나, 어떻게 매일 그렇게 할 수 있지? 같은 소리를 듣는데 어릴 때부터 그 소리를 듣던 내 귀에는 이상하구나로 들려 버린다. 하루가 24시간이고 그중에 1시간 정도 조깅을 하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일까 생각해보지만. 우리는 매일 하는 일들이 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고, 집으로 가고, 집에서 나오고. 우리가 그런 일에 대단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뭐 하지만 좀 이상하게 보이면 어때,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나는 그만이다.
작년인가 해운대 고깃집에서 일행과 함께 고기를 먹었다. 고기가 다 익었는데 일행이 계속 젓가락을 사진 찍고 있는 것이다. 젓가락 손잡이 부분을 폰으로 유심히 이리저리 찍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젓가락을 찍고 있었다. 웃기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해서 나는 그 표정을 몰래 찍었다. 일행은 젓가락의 무늬를 찍고 있었다. 그게 미묘하지만 식당마다 젓가락, 쇠젓가락 무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식당을 자주 가지 않아서 나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너 참 특이하구나,라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그 말 오빠가 자주 듣던 말 아니야, 라며 일행이 웃었다. 남들에게 듣던 말을 나도 하다니 결국 나도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
일행은 클래식 공연에 관한 일을 한다. 그들을 섭외하고 공연장의 세세한 부분(음향이라던가 장비 그런 것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공연이 잡히고 연주회가 시작되면 그 기간 동안 합숙을 하듯 공연자와 함께 공연장을 뒷받침하는데 그 세계가 참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들의 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드뷔시의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드뷔시의 곡 중에 라메르가 있다. 드뷔시는 살아생전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건너온 그림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를 보고 그대로 ‘라메르’를 작곡했다.
그 곡을 듣다 보면 기분 나쁠 정도로 파도가 치는 광경과 그 속에 몸이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드러나지만 곡 전체에 깔린 일본풍의 기이한 느낌은 소름까지 돋는다. 어째서 달랑 그림 한 장을 보고 이렇게 작곡을 할 수 있을까. 드뷔시는 정말 특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는 고깃집에서 ‘라메르’를 들었는데 우리는 정말 이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