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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5.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46

12장 5일째

346.


 바다가 끓어올라 죽은 남자의 친구들은 가족에게 사실을 전했고 유가족은 해변에 단상을 마련하고 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가족에게서는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가족은 보상에 관한 문제만 타협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청과 구청에서는 위령제에 관한 비용은 낼 수 없다고 했고 유가족과 죽은 남자의 친구들은 시청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또 한 번 크게 마찰을 빚었다. 어디선가 계란이 시장의 가슴에 날아들었다.



 류 형사는 서류를 보면서 평온하기만 하던 이 도시에서 한꺼번에 터져버린 기이한 사건으로 서늘한 본부의 에어컨의 냉기 속에서도 몸이 달아올라 땀이 흘렀다. 땀은 차가운 실내의 냉기에도 보란 듯이 흘러내렸다. 에어컨의 바람이 있으면 땀은 흐르지 않는다. 보편성이라는 것이 모든 것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사건이 지구의 종말을 요하는 시작이라면 좋겠다고 류 형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손등으로 땀을 닦고 바지에 비볐다. 청바지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바지임에는 틀림없다. 모두가 한꺼번에 죽어버렸음 얼마나 괜찮은 멸망인가. 백악기를 지내고 공룡들 한꺼번에 화석이 된 것처럼 인간들도 한꺼번에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전부 멸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공평하다. 그동안 세상이 공평하다고 교육을 받아왔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전혀 공평하지 않았다. 부자는 더욱 부를 축척하고 가난한 자들은 늘어나거나 목숨을 끊어 버렸다. 자본주의의 병패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지구가 반으로 갈라진다면 부와 명예에 상관없이 공평하다. 그렇게 되면 수빈이도, 나 역시도 공평함 속에서 다 같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지금 죽지 못해 사는 거와 다를 바 없다.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류 형사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중앙 본청에서 사건을 검토한 후 그곳에서 사람들을 내려 보냈다. 그들과 류 형사의 부서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번 사건의 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고, 합동수가 진행방식이 아니었다. 본청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류 형사가 봤던 형사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줄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문 브로커 같은 모습들이었고 아주 재빠르고 실수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부에서 무엇인가 이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류 형사 본인이 수사하는 것은 어쩐지 겉돌고 있는 수사였고 정부에서 하는 방식은 일개 형사들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류 형사의 감각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부는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나 뚜렷하지는 않지만 형태를 감지하고 있었다. 투입된 본청의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본청의 명령으로 류 형사는 아파트의 두 사건을 맡았다. 그렇지만 류 형사는 선배의 부탁으로 실종사건도 알아봐야 했다. 오늘은 어제 허탕을 쳐서 만나지 못한 고마동을 만나야 한다. 고마동에 관한 건 깨끗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없어서 아직 신호위반이나 주정차 단속에 걸린 적도 없었다. 경북 경진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서 이 도시로 와서 자랐다. 대학교까지 마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군대도 다녀왔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류 형사는 잠시 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그는 유리병처럼 깨끗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에 속했다. 하지만 고마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니까 고마동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고마동이라는 남자가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괜히 이리저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휘둘리게 되면 인간관계만 엉망이 되는 경우를 류 형사는 많이 봤다. 류 형사가 직접 가야 했지만 실종사건을 공개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 경진에서 근무하는 후배 형사에게 들은 이야기로 고마동의 어머니는 깊은 밤처럼 고요한 사람이고 했다. 말도 몇 마디 하지 않았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류 형사는 자신의 폴더 폰으로 전해오는 후배 형사의 이야기를 작은 수첩에 한 손으로 무뚝뚝하게 받아 적었다. 고마동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한 후배 형사의 말로는 그 어머니라는 사람은 무엇인가 먼 세계의 사람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류 형사가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아들에 대해서 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지, 아들을 잘 모르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언어적으로 일반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후배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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