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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8.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49

12장 5일째

349.


 심장이 드세게 뛰었다. 마동은 꺼져있는 에어컨을 한 번 본 후 고요하고 산란된 빛만이 내려앉은 거실을 지나 냉장고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주스가 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자줏빛을 띠는 붉은색의 주스는 냉장고 안에서 깊은 바다의 심해어처럼 미동 없이 있었다. 마동은 주스 병을 잡고 뚜껑을 돌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붉은색의 끈적끈적한 주스는 마동의 목을 통해 내려가면서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심장을 거쳐 각 기관으로 내려갔고 손가락 끝과 발톱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주스가 몸으로 퍼질수록 마동의 혈관은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 냈다. 몸으로 퍼지는 기분은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야외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해 질 녘의 포장마차에 앉아서 굶주려 쪼그라든 위장에 소주를 들이붓는 기분과 흡사했다. 분노가 맹렬하게 혈관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주먹을 쥐니 무작스럽게 변한 주먹이 보였고 분노의 대상에 주먹을 휘둘러 대상의 흉곽을 박살 내버리고 싶었다. 마동의 몸은 노곤함에 젖이 있다가 분노의 급류를 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배위(背違)의 몸은 일순 가벼워졌다.


 나가서 그녀를 찾자.


 장군이를 만나서 대상에 대해서 물어보고 찾아가서 목뼈를 부러트리고 싶었다. 일어서니 조깅을 할 때와 몸 상태가 비슷해졌다. 그녀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최원해처럼 사라져서는 안 되는 그녀였다. 밖으로 나갈 때는 병원에서 건네준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 기이한 병원에서 기이한 의사가 처방해준 기이한 선글라스였다. 마동은 선글라스를 썼다. 기이한 선글라스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순간 실내지만 시야 확보가 좋았고 눈이 편안했다. 시야각 180도가 눈에 전부 들어왔다. 마동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는개에게 전화를 해봐야 했다. 그녀도 만약, 만약…….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위험한 상상은 하지 말자.


 붉은색의 주스를 마시고 가슴이 심하게 뛰는 것도 안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불안함은 확실하게 마동의 마음을 압박하며 조여왔다. 사람들의 두려움에 가득 찬 의식이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바지 주머니를 뒤지고 일어나서 방으로 가려다 식탁 위의 메모지를 발견했다. 작은 메모지에는 는개가 써 놓고 간 흘림체의 활자가 가득했다.


 [당신의 잠꼬대를 들었어요. 그 잠꼬대는 깊은 슬픔이더군요.

 단지 그렇게 들렸을 뿐이지만.

 당신은 감당해내지 못하는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어요. 왜 당신은 힘겨운 길을 걸어가는지 마동 씨는 알지 못해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해요, 그 누구도 말이에요. 전 당신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는개가 적어놓은 메모는 꽤 길었다. 꼼꼼하고 야무진 그녀만의 필체가 편지지 가득 쓰여있었다. 그녀가 써 놓은 글씨에는 그녀의 말투가 묻어 나왔다. 는개는 덤덤하게 가느다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녀만의 필체로 메모를 써놓고 나갔다.


 [이 세계에서 필요 없는 존재는 없어요. 인간의 이기심이 박멸이라는 이름하에 없애려는 바퀴벌레들도 오랫동안 잔존감을 남기며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바퀴벌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벌레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오랫동안 보이는 것만 믿어왔어요. 당신은 닿을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려고만 해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전 그걸 알 수 있어요. (웃음) 지금 편지를 읽을 당신, 절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옷은 제가 들고 갈게요. 깨끗하게 빨아서 다시 입고 당신과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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