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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53

12장 5일째

353.


 “돈이 많다는 것은 말이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돈이 많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오너의 말처럼 클라이언트는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서 그 사람의 좋은 기억을 간직한다는 것에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좋은 물건, 좋은 신발, 좋은 건물보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마동은 잘 알고 있었다.


 마동은 자신이 변이하고 있음을 정부의 관계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까지 그들은 전혀 마동에게 접근을 하거나 감시하는 분위기가 없다. 클라이언트의 뇌파 채취에 동행한 이후로 마동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졌다. 같이 조깅을 하던 최원해가 사라졌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기이한 사건으로 두 사람이나 시체로 변했고, 초현실적인 천재지변으로 바다가 들끓어 사람이 익어서 죽었다.


 마동은 회사에 출근하지도 않았고 행방도 묘연하게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정부의 사람들에게서 아직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낌새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동은 자신이 지갑을 뒤져 사무실에 찾아온 그들에게서 건네받은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명함을 보니 그저 종잇조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설퍼 보이는 듯했지만 아주 견고한 명함이었다. 불필요한 글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고딕체로 정보국이라는 글자가 짤막하게 쓰여 있고 그 밑에 이름이 있고, 밑에 전화번호만 있었다. 테두리가 금장으로 둘러져있어서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명함 같았다. 계속 손에 들고 보다 보니 명함은 마치 그 나름대로의 완벽한 유기체처럼 보였다. 바닥에 던져 놓으면 금장에서 다리가 기어 나와 스멀스멀 움직일 것만 같았다. 마동은 더 이상 쳐다보다가는 정부 부서 사람의 명함 속에 갇혀 버릴 것만 같았다.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음악이 나온다거나 대기음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그건 마음에 들었다. 불필요한 음악이나 연주곡 따위는 필요 없는 소음에 가까웠다. 몇 초 동안 듣는 연주곡은 최악이다. 마동 쪽에서 정확히 세 번 울린 후 그는 전화를 받았다.


 모두 세 번 울리면 전화를 받는군.


 차가운 바이칼 호수 같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마동은 아침에 벌써 두 명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고마동 씨, 저에게 전화를 다 주시고 조금 놀랐습니다.” 정부 쪽 사람은 조금은 경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마동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일어난 지 오래된 목소리였다. 적어도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신 다음 제대로 된 호흡을 하고 잠을 자는 동안 굳어있던 신체의 각 관절을 풀어주고 15분 이상 조깅을 마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는 건강함이 묻어났고 더불어 긴장감도 풍겼다.


 “고마동 씨가 저에게 전화를 할 일은 없을 텐데, 하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경쾌함이 잠시 들었다가 이내 냉정하고 잔잔한 수면 같은 톤을 찾았다. 수화기 너머로 스미스 요원이 넥타이를 만지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마동은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죠. 인사를 먼저 해야 하는데 말이죠”라고 정부 사람이 말한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가 전화를 드린 건”까지 말했을 때, 마동의 말을 끊고 스미스 요원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정부는 당신을 감시 체재의 대상이라고 선포하고, 아, 영화 스토커에서 시모펠리스가 리나의 가족을 감시하듯 당신을 감시해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정부가 느슨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상해서 전화를 한 것이군요”라고 그는 냉정하고 사무적이게 말을 했다. 그의 말은 정확은 넘어서 적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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