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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3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52

12장 5일째

352.


 “아마도 그럴 겁니다.”


 오너는 마동에게 건강해라는 말을 남기고, 마동도 오너에게 인사를 했고 전화는 끊겼다. 오너의 말소리가 뚝 끊어지니 사고의 흐름도 동시에 끊어진 것 같았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휴대전화가 있어서 마동은 단절되었던 이 사회와 조금은 소통이 가능했다. 소피와도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모바일 휴대전화 덕분이었다. 마동은 소피를 떠올리니 소피가 한국으로 프로모션을 온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쩌면 소피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는개의 모습이 눈앞에 현실처럼 펼쳐졌다.


 박. 는. 개.


 그녀를 두고 떠나야 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마동을 찾으러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동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마동이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모르는 무엇으로 되어있는 존재다. 그녀는 마동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메모를 남겼다. 마동은 그 메모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메모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잘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부분이 마동의 마음 어느 한 곳을 눌렀다. 그 부분의 떨림이 마음에 전해지니 저 깊은 곳에서 작고 미미한 뭉클함이 바닷속의 맑은 기포처럼 피어올랐다. 순간 마동은 는개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당장 전화를 하고 회사 근처에서 잠시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동은 격한 목마름처럼 그녀가 보고 싶었다. 휴대전화를 열고 아직 저장되어있지 않는 는개의 번호를 1번으로 저장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마동은 통화버튼 위에 엄지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저기 말이야, 나 지금 는개가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무엇보다 는개가 속삭일 때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통화버튼에 엄지를 갖다 대지는 못했다. 는개는 바쁘더라도 마동의 전화통화를 내치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마동은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성이 감정을 검열하고 말았다. 그녀는 두고 떠나야 한다. 자신과 가까이 있으면 사라진 다른 이들처럼 는개도 없어지고 만다. 그녀에게만은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동은 주스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오너가 알아서 처리를 했다고 하지만 마동은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들을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소명인 것이다. 그는 돈이 많았고 더불어 살아갈 날은 점점 줄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자본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는 소원을 이루는 방법의 길목에 서 있었고 마동은 그 길목의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이미 통장에는 엄청난 액수의 현금이 들어와 있었다. 이 돈은 마동이 3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한 돈이었다. 물론 직접 건네받지 않고 오너에 의해서 받은 돈이지만 결국 클라이언트에게서 흘러나온 돈이니 그에게 받은 셈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했다. 받는 소리가 들리고 마동은 클라이언트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기분 좋은 콧수염이 달린 아저씨처럼 마동의 말을 듣고 회사를 관둬야 하는 문제를 걱정해주었다. 나머지 작업은 회사에서 깔끔하게 처리할 거라는 마동의 말에 클라이언트는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는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낡은 시간의 냄새가 있었다. 낡은 시간은 수화기를 통해 마동에게 전해졌다. 시간이 낡았음을 느낀다는 것은 어떠한 상실을 맛보게 했다.


 그는 웃으며 마동에게 건강해라고 말했다. 대체로 마동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마동에게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의 입장에서 아들을 생각하면 건강이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 마동은 수화기에 대고 클라이언트를 향해 오너에게 하듯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은 받아들이는 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보는 시야가 넓다. 보채거나 화를 쉽게 내지 않는다. 마음을 졸이고 화를 내봐야 상처를 받는 건 본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늙음에 아쉬워하고 힘들어한다. 반면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보지 못한 이들은 고집이 세고 막무가내다. 젊지만 시야가 좁아서 늘 상처 받는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렇게 순환하고 있다. 늙었다 하여 전부가 아닌 것, 나쁜 것, 안 좋은 것으로 묶어서 구석진 곳에 버려 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의 최고통수권자는 바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마동은 클라이언트가 돈에 대해서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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