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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0.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61

12장 5일째

361.


 “여자는 그 사건 이후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인사치레를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자신 안에 점점 가둬 버렸죠. 집에서 꼭꼭 숨어 지내는 겁니다. 그러면 외모가 변합니다. 움직임이 없고 식사만 하니 살이 찝니다. 그러다 보니 뚱뚱하게 변한 모습을 두고 또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더더욱 집안에서 나가지 않게 되죠. 정작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버젓이 길거리를 다니고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회사를 웃으며 다니는데 말이죠. 집에서 그렇게 꼭꼭 숨어 지내다가 증상이 심각해서 시설에 들어가 있습니다. 요양시설에 가서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병실에서 요즘도 버스를 타는 시늉을 한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던 최원해라는 그 사람, 그 이후로 안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 여자의 인생을 망가트려 놓았죠.”


 류 형사는 빈 커피 잔을 들어서 마동에게 한잔 더 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동은 커피를 한잔 더 류 형사에게 부어주었다. 신참 형사에게도 한잔 더 부어 주었다. 찻잔을 쥐고 있던 신참 형사의 손은 바위처럼 보였다. 거실의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마동 씨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서 일어난 두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성도착증이 심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내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해왔던 겁니다. 아내니까 누구도 몰랐고 그 사람의 아내도 타인에게 남편의 부조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이거든요. 누가 안다고 해도 부부의 성생활이니 이러쿵저러쿵 할 수도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부부의 섹스리스가 세계 1위라고 하니.”


 “아내는 남편이 의자에 뒤로 꽁꽁 묶어놓고 남편 자신의 노리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도 속옷으로 꽁꽁 묶여 아내의 팬티와 속옷을 위장에 억지로 밀어 넣고 기도가 막혔습니다. 굉장한 고통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류 형사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마동의 표정을 살폈다.


 “아내가 묶여 있는 상황에서 어떤 누가 들어와서 남편을 그렇게 입속에 속옷을 잔뜩 넣었다는 것인데 집안에는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습니다. 벌레 한 마리 들어온 흔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부인이 그랬다는 말인데, 부인의 팔다리도 의자에 묶여 있었고 풀린 흔적이 없습니다. 밤새도록 묶여 있어서 손과 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들듯 합니다. 뭐 거기까진 그렇다고 칩시다. 시체의 위장과 기도 속에서 끝없이 나온 속옷이며 스카프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했다면 그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많은 양의 속옷을 사람의 위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설명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부인의 남편은 저항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최원해가 산속에서 소거되었듯, 남편도 저항 없이 입으로 속옷을 받아먹어 버린 것 같거든요.” 말을 끝내고 류 형사는 마동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수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해도 되는 겁니까?”마동은 처음 류 형사를 만났을 때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질문을 했다. 류 형사는 설치류를 발견한 맹금류의 눈빛으로 마동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맞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잘 알고 있군요.” 류 형사는 볼펜 끝을 다시 입에 물었다.


 “영화에 많이 나오니까요.” 마동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류 형사가 전해주는 사건의 세세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표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마동의 얼굴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려면 때로는 발설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발설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의 결과가 비록 초라하다고 할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함이 들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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