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06.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6

14장 6일째

416.


 천둥소리와 함께 몇 번의 신음이 되풀이되었다. 마른 입술과 촉촉한 입술은 여러 번 교차되었고 교차될수록 두 사람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강하게 원했고 끌어안았다. 아름다운 신음소리는 몇 번이나 허공에 퍼졌고 끓여놓은 죽은 서서히 식어갔다.     


 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은 끝나 버렸어.

 우리는 결국 모두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왜 이 노래만 계속 나오는 거지……”라고 마동이 혼잣말을 했다.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려요. 좋으면 계속 들으면 돼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그래, 계속 들어.”


 “그래요, 계속 들어요.” 는개가 웃었다. 바람의 저 끝에서 불어오는 웃음이었다. 흉내 낼 수도 없고 다시 볼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자아낼 수 있는 웃음이었다. 는개의 웃음은 쌓여있던 어둠의 찌꺼기를 쓸어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그녀가 웃음을 만들어내면 시간이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는개의 웃음을 계속 보고 있으면 세계는 전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는개의 미소는 사고의 재생력을 점점 뒤로 후퇴시켰다. 는개의 웃음 속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견고한 관능도 함께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는개의 또 다른 모습일까. 그녀가 떠나고 나면 난 그녀의 웃음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는개만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동은 만족하리라 다짐했다. 는개의 부재가 몰고 올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허함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마동의 옆에는 그녀가 있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이것은 실체였고 실재다.


 그래, 그러면 다행인 거야.


 마동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작은 손을 잡았다. 작았다. 너무 작아서 꽉 쥐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는개의 마음과 비슷했다. 강인하게만 보였던 는개의 손은 너무 연약하고 부드러웠다. 는개도 마동의 손을 쥐었다. 부드러운 손바닥은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손바닥의 마찰은 두 사람의 근원적 순수를 나눠가졌다. 는개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다. 마동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는개의 손을 이렇게 꼭 쥐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늘어진 안개처럼 굉장히 미미하고 작은 그녀의 손을 놓칠세라 쥐고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던 기억이 있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저 끝으로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다. 빛이라고 하는 것이 원해 그렇게 작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 멀리 있어서 빛이 작게 보이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런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조금 느린 걸음걸이로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앞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작았고 부드러웠다. 분명 희미하지만 기억이 났다. 걸어가는 동안 포르말린 냄새가 곳곳에 있었다. 냄새도 기억이 났다. 허용의 한계를 넘어선 냄새. 오롯이 그 하나의 냄새가 났다.


 벌어진 살갗 사이로 피와 진물이 흐르는 냄새가 나던 곳.

 알코올에 적시 솜이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냄새가 나던 곳.

 고통에 허덕이다 결국 절망적인 침묵의 냄새가 나던 곳.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