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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5.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5

14장 6일째

415.


 “귀여운 스토커.”


 “귀여워도 스토커는 스토커죠. 대부분 스토커들의 시작은 귀엽게 시작하죠. 미저리처럼”라며 고개를 돌려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마동은 그 모습을 보고 아이구 무서워,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가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지 마동은 잠깐 생각했다.


 “그때 당신이 라디오 헤드의 ‘렛 다운’을 듣고 있었어요.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그 노래의 어느 부분을 따라 불렀어요. 알아요?”


 “내가? 설마……” 마동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붉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는개는 그때가 생각나는 듯 슬며시 웃었다.


 “렛 다운은 저도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종종 들었어요. 당신이 그 노래에 심취해서 듣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마치 아이돌을 향한 여고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당신도 좋아하는구나. 하며 말이죠. 렛 다운을 듣고 있으면 당신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이 어린 당신의 연약한 냄새를 놓치지 않고 있었거든요. 당신의 감각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들었어요. 꽤 듣다 보니 톰 요크의 그루미 한 목소리 속으로 한껏 들어갈 수 있었어요.”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대중가요 같아”라고 마동이 말했다.


 “흥, 또 재미없는 소리.” 는개는 개방적인 얼굴로 개방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열정이라든가 욕망, 그에 따른 철학적 성찰 등이 명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헤드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들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래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또 ‘거울 잠’이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 역시 무엇을 의미할까?” 마동은 혼잣말을 했다.


 “글쎄요, 뭘까요?” 그녀 역시 혼잣말을 했다.


 흠.


 “라디오헤드는 언제쯤이면 단독 공연을 하러 올까요?” 는개가 물었다.


 “글쎄, 자본이 떨어지면 회수하러 오지 않을까?”라고 마동이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설마,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깨를 들었다가 내리면서 마동은 농담이라는 포즈를 취했다.


 는개는 손에 주걱을 든 채로 양팔을 천장으로 올려 곧게 쭉 뻗으며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이제 갓 바다 쇼를 위해 큰 바다에 뛰어든 푸른 돌고래처럼 매끈한 등의 한 부분이 수줍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마동에게 그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였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사진에 담아서 몰래 혼자서만 꺼내서 보고 싶었다. 상상의 흥분이 몸 안으로 전달되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가 그냥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제 다시는 저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더는 작은 는개의 몸을 안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오늘 밤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 약속은 더 이상 약속으로 남아있지 않고 공중에서 폭격을 맞아 가루로 부서질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지 않아서 약속이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는개는 마동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밥상에 두 그릇의 죽을 만들어 거실로 들고 왔다. 비가 바람에 날려 더욱 세차게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에 듣는 거센 빗소리는 거실의 공간을 점 더 쉬르리얼리즘으로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베란다 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비가 오면 회사에 다시 가기가 힘들겠어”라고 마동이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이 바래다주면 되죠”라며 는개는 웃었다. 그녀는 작은 상을 내려놓고 마동의 앞에 죽그릇을 밀어주었다. 마동은 음식물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분명 몸에서 거부할 것이다. 그 반응의 표출을 그녀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마동은 아직 씻지 않았다며 욕실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는개의 작고 부드러운 손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여 마동을 끌어당겼다. 죽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한 이불처럼 포개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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