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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7.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7

14장 6일째

417.


 포르말린 냄새가 기억이 났다. 오래된 복도의 바닥과 오래된 병원용 침대가 보였고 오래된 형광등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볼 틈도 없이 느린 걸음으로 통로의 저 끝으로 손을 잡고 걸어갔다. 작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향해서 걸어갔다. 통로의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어딘가에 살포시 서로 누웠다. 조용한 하루였다. 침묵이 겹겹이 내려앉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을 내리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의 향이 우리를 간질이고 치누크가 불어와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저녁노을의 그림자처럼 은은한 빛을 받으며 나는 영혼이 그 빛에 사로잡혀 간다는 것을 알았다. 짧지만 강인한 한순간의 풍경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녀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아픈 마음을 지닌 그녀의 미소를. 그녀만의 슬픈 미소를.   

  

 마동은 는개의 손을 쥔 채 눈을 떴다. 는개의 손은 이전보다 강렬하고 맹렬한 그 무엇을 마동의 손을 통해 마동에게 전달해주었다. 마동은 자신이 그동안 희미하게 꿈에서 봐왔던 전경의 모습 속에 나타나는 희미한 모습의 그녀가 는개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는개는 마동보다 나이도 어렸다. 어린 그녀는 마동과 사는 곳도 달랐고 시간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마동은 그동안 는개를 만났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하기 전까지는.


 어째서 는개의 손을 잡는 순간 마동의 희미한 꿈속의 전경이 탁 트였던 것일까. 시간이 왜곡되고 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두 사람은 만났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 마동은 어린 자신이 왜 병원으로 갔는지, 는개는 왜 병원으로 와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흐름을 생략하고 손을 잡고 만났었고 현재 같이 있었다. 지금 는개를 안고 있는 현재가 소중했다. 는개의 작은 손을 이렇게 꼭 쥐고 있는 지금이 마동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동은 의식과 무의식을 총동원해 지금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엄마가 안고 있는 아기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몇 번의 천둥소리가 또 들렸고 몇 번의 마른번개가 떨어졌고 그 사이 는개의 신음소리가 몇 번 들렸다.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전위를 나눴다. 는개는 마동의 입에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미소. 는개는 발가벗은 채 죽 그릇이 올려진 상을 두 사람의 앞으로 당겼고 마동은 12월에 버려진 연탄재처럼 널브러져 있던 옷을 주워 들고 입으려고 했다.


 “입지 말아요. 발가벗은 채 죽을 먹어봐야 더 맛이 좋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벗은 몸을 한동안 보고 싶어요”라며 는개는 죽 그릇을 마동에게 권했다. 는개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 포함되어있다.


 흠.


 “정말 발가벗고 먹으면 죽 맛이 좋은 거야?”라고 마동이 눈을 크게 뜨고 처음 레고의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처럼 말했다.


 “설마요.” 는개는 웃었다.


 “알 수 없는 여자야.”


 두 사람은 모두 발가벗은 채로 죽 그릇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죽을 먹으려 했다. 마동은 음식물이 탐탁지 않았다. 속에서 거부할 것이 뻔했다. 는개가 맛있게 죽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동은 숟가락으로 죽을 젓기만 했다. 죽은 이미 식어서 김(steam)이 모두 빠져나가 버렸다.


 “괜찮아요. 먹어봐요. 꽤 맛이 날 거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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