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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8.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8

14장 6일째

418.


 “난 안 먹어도 괜찮은데. 속이 좋지 않아.”


 “그래서 죽을 만들었어요. 먹어봐요. 제가 맛있다고 하면 꽤 괜찮은 맛이 날 거예요. 말했지만 회를 맛있게 썰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구요 저는.”


 는개는 정말 코를 찡긋거리며 떠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손짓을 보면 손짓이 시키는 대로 하게 돼 있었다. 거부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힘이었다. 마동은 자신 앞에 있는 작은 그릇에 담겨있는 야채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는개의 말처럼 거북하지 않았다. 이 여자는 정말 요술쟁이란 말인가? 마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는개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는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가녀린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도자기처럼 도도한 쇄골이 눈에 들어왔고 적당한 자리에 자리 잡은 가슴과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마동은 또 한 숟가락 조심스럽게 떠먹었다. 역시 괜찮았다. 그리곤 죽 그릇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마동은 는개를 보며 어째서? 하는 눈빛을 띠었다.


 “저기 있는 주스를 좀 넣었어요. 당신이 잘 마시는 것 같아서요. 소스 대신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 맛에 빠져들 것 같아요”라며 는개가 숟가락으로 주스 병을 가리켰다. 마동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그대로 묻어두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어제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 처럼 무의미했다.


 마동은 죽을 남김없이 전부 먹었다. 그로서는 6일 만에 씹을 수 있는 음식물을 회 다음으로 먹은 것이다.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이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배고픔, 인간이 지니는 가장 밑바닥의 욕망,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마동에게도 배고픔의 시절이 있었다. 배고픔이 배를 벗어나서 인체의 모든 부분을 잠식하고 목 위로 머리로 올라와서 괴롭히던 시절.


 마동은 는개가 끓여준 죽을 먹고 배고픔을 다시 느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의 모습 같았다. 는개는 발가벗은 채로 마동의 그릇에 죽을 한 그릇 다시 담아왔다. 그녀의 음모가 걸을 때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는개도 한 그릇 더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그녀의 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날씬했다. 는개는 먹은 음식은 체내의 지방에는 축척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죽을 두 그릇이나 먹었지만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죽인데요 뭐, 그릇도 작고.” 는개는 죽 그릇을 들고 마동에게 말했다.


 맙소사.


 마동은 는개가 떠 준 죽을 말없이 긁어먹었다. 비어있던 위장과 마음이 죽으로 가득 채워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죽은 그녀와 닮았다. 는개와 닮은 죽이 마동의 바닥에서부터 쌓였다. 당연하지만 위에서부터라든가 중간에서부터 쌓일 리는 없다. 검은 비가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마동은 베란다를 통해 하늘을 보았다. 는개가 갑자기 마동의 뺨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었다. 미미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일까, 는개의 손바닥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웠다. 는개의 손바닥은 냉정했고 누구와도 타협을 거부할 것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이 그랬다. 하지만 는개에게서 느껴지는 날이 선 냉정함은 마동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고 앞으로도 따뜻할 것이다. 작지만 끝나지 않는 세계가 있는 손이었다. 는개만의 아프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손이었다.


 이제 앞으로 는개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밀려들었다. 그녀가 왜 지금 마동 자신의 뺨에 손바닥을 갖다 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마음이 는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은 두려워서 는개의 뺨을 두 손으로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는개가 자신의 손으로 마동의 손을 잡고 그녀의 뺨을 만지게 해 주었다. 는개는 마동의 오른손등과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입맞춤을 해 주었다. 눈을 감은 그녀의 눈에서 마른땅 위에 위태로운 새싹이 솟아나듯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눈물의 의미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마동도 는개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손바닥에서 그녀의 향이 났다. 부드러운 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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