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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3.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32

14장 6일째

432.


 마동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퀴벌레에 대한 기억을 떠 올려보았다. 바퀴벌레는 지구 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선뜻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흑갈색을 지닌, 그 모습을 편견을 가득 안고 바라봐야만 했다. 바퀴벌레 하면 징그러운 다리들이 먼저 떠올랐다.


 마동이 아주 어린 시절 혹독히 추운 겨울에 새벽잠에서 깨어나 소변이 마려워 문을 열고 방을 걸어 나왔다. 눈은 반쯤 감겨있고 어기정 어기정 방에서 걸어 나와 어떤 문을 열었다. 그 문이 어떤 문인지 어디서 마동 자신이 자다가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저 아주 어린 시절에 몹시도 추운 겨울의 날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그때 잠은 마동의 의식을 반이나 잡아먹고 있었지만 마동은 방문을 열고 나와서 어떤 문을 열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걸음처럼 불안했다. 소변을 보려고 나가다가 발바닥으로 어떤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밟았다. 그 느낌은 확실하게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하늘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어린 마동의 의식에서 잠이라는 것이 몽땅 달아나버리고 찬물이 뇌에 확 들어찼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매끈거리고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감촉 때문에 발바닥에 힘을 주지 못했다. 마치 발밑에 그것은 그 감촉을 통해서 발바닥에 힘을 줬다가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라고 마동이 밟은 그것이 전했다. 그렇게 느껴졌다. 겁이 났다. 그렇다고 밟은 발을 쉽게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발을 들어 올리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공포는 더더욱 커졌다.


 발바닥에 홈을 만들어 마동은 밟은 그것을 보호하려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밟혀 있는 그것은 마동이 밟은 발바닥에 힘을 주지 못하게 해서 그것의 몸뚱이가 터지지 않게 하려는 듯 마동을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서있게 했다. 추운 겨울 새벽의 날씨는 박해 적이고 매서운 바람을 만들어내서 어린 마동을 심하게 괴롭혔다. 마동은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밟혀있는 그것은 마동에게 소리를 질러서 누군가를 부른다면 역시 그에 해당하는 복수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어린 마동이었지만 밟힌 그것이 바퀴벌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밟힌 바퀴벌레지만 그것은 등을 통해서 마동에게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어린 마동은 바퀴벌레가 몸에 닿아서 이제 곧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수포가 생겨 터지면서 진액이 끝없이 흘러나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영원히 누워있게 되고 곰팡이가 몸 전체에 번져 결국에는 푸석해져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어린 마동은 무서움에 몸은 심하게 떨렸다. 마동이 떠 올린 바퀴벌레는 그런 존재였다.


 소름 끼치고 혐오스럽고 무서운 바이러스를 옮길 것 같은 모습.


 하지만 그것은 마동의 편견이었다. 그때 마동은 바퀴벌레를 밟으며 바퀴벌레의 등이 발바닥에 닿는 순간 무엇인지 모를 숙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숙명이라는 것은 불우하고 희미하고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마동이 결국 발을 들자 바퀴벌레는 2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다다다닥 거리며 몇 개인지도 모를 다리를 움직여 재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기어들어갔다. 그 2초 동안 마동은 바퀴벌레에게 여러 가지 초현실적인 인상을 받았다. 바퀴벌레는 자신을 죽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다다닥 거리며 기어가다가 바퀴벌레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바퀴벌레는 잠시 멈춰서 몸을 돌린 후 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실은 확실하지 않았다. 마동이 기억하는 바퀴벌레에 대한 부분은 그것뿐이었다. 그때 마동이 살려준 바퀴벌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천 마리의 알을 낳아가며 진화해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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