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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6. 2021

런던 팝에서 2

단편 소설



2.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창문으로 보면 건물의 한 지점에서 꾸준하게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보통의 경우, 시선이 느껴져 창문을 통해 그곳을 쳐다보면 그 시선은 대체로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경우와 다르게 그 시선이 머무는 공허는 창문으로 내가 가서 바라보면 더욱 강해졌다. 뻥 뚫린 공백의 공허가 깊고 컸다. 그건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다. 어떤 무엇이 나의 방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뿐이다. 사람이 쳐다본다는 느낌도 어쩐지 으스스하지만 사람의 시선이 아니기에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무엇인가가 내 방을,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시분은 아주 이상했다.


 어느 날은 건물의 창문으로 달이 비쳤는데 힘 좋은 누군가가 억지로 끌고 온 듯한 달처럼 보였다. 달이 달처럼 보이지 않았던 밤. 그 날 그 시선은 더욱 강하게 느꼈다. 소름 돋을 것 같은 차가운 시선이지만 나는 그 날 이후 매일 밤 집으로 와서 그 시선을 받으며 시선의 공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부패한 시체를 목격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물론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건 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게다가 부패한 시체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패한 모습이었다. 부패했지만 썩어가는 기능이 무섭도록 작용하고 있어서 꼭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모습을 나는 바라보았다.      


 나는 간판에 들어가는 텍스트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작업은 대체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하는 것에 비해 나는 포토샵으로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작업은 사진을 가지고 활자를 도안하는 방법으로 꽤나 이 바닥에서는 흥미로운 것으로 여겨져 내가 하는 작업 방식을 찾는 고객이 여러 곳이었다. 간판 업체에서는 간판을 만드는 일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인쇄를 하기도 했고, 명함을 만들며 각종 기념품 디자인 작업도 했다. 그 외에 티셔츠 도안, 부착물의 인쇄나 고속 복사까지 모든 일을 했다.


 나는 여러 간판 업체의 하청을 받아서 그에 맞게 텍스트 디자인을 포토샵으로 작업을 하여 도안한 기획안을 이 메일을 통해서 보내고 서면 답변을 받고 수정 작업을 요하면 그에 맞게 다시 수정 작업을 거친다. 사무실이 따로 있으며 대표라고 불리는, 4살 아래의 여성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대표는 주로 업체를 돌아다니며 하청을 받아오는 일을 하는데, 영업을 하는 것을 어이없게도 잘해서 날이 갈수록 일거리가 늘어났다.


 그 방면으로는 재능을 보이는 여자였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서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 눈 팔지 않고 일에 몰두해야 했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불만은 없다. 나는 대체로 수동적인 인간으로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에 적극성을 띠는 그런 타입이었다. 무엇보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이 상황에서 일이 넘친다는 건 생계에 타격은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고 사람과의 대면이 없기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도 당연히 없다. 4살이나 적은 여자와 함께 일을 하니 대표와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면 갑을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28살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간판업체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다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따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나 역시 홈페이지 제작회사에서 아이콘을 디자인하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활을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로 월급은 형편없었고 이제 이런 전문성을 띠는 분야들이 대중화가 되어서 사람들은 전문 업체에 일감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표인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같이 일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작업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 눈을 팔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도 같이 일을 하게 되면 하는 일이 많아질 거예요."


 나를 보자마자 그녀가 한 첫 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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