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요즘은 닭가슴살도 맛있게 나온다.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기만 하면 된다. 퍽퍽함도 없다. 간장 양념이 가슴살 안쪽까지 골고루 스며들어 있어서 뜨거울 때 잘라서 먹으면 뭔가 요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닭가슴살은 대체로 닭 중에서 맛이 없는 부위로 모두가 꺼려하는데 또 그 퍽퍽한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이다. 그냥 퍽퍽한 맛으로, 물에 불은 종이를 씹는 것 같은 식감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게 나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맛있는 가슴살이 나오면 이것만으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한 끼 정도는 먹지 않는데 하루에 세 끼를 꼬박 다 챙겨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인간은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기를 바란다. 삼시 세 끼는 언제부터 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세끼 식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배가 덜 고프거나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을 먹게 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먹기 싫은데도 밥때가 되면 어머니가 불러 밥을 먹였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챙겨 먹는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코 앞에 토끼가 앉아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만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어떻든 때가 되면 챙겨 먹는다. 인간이 세상에 난 이래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그렇게 구조화되었다. 이런 시스템은 인간이 만드는데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인간이 속하게 되었다.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 내가 속한다. 반나절을 거의 움직임이 없이 컴퓨터 앞에만 있어야 하니까 먹는 족족 살로 가버리기 때문에 나는 두 끼 정도 먹는 게 그간의 나를 보면 맞다고 본다. 그래서 누군가 찾아와서 밥을 먹자며 나가자고 하면 난처하다. 게다가 나는 천천히 먹기 때문에 맞은편에 앉은 타인의 속도에 따라가질 못한다. 일하는 도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찾아온 사람은 식사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데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망치게 된다.
어떤 음식은 기묘하게도 배가 불러도 계속 먹게 된다. 그런 음식은 앉아서 먹을 때는 배부른지도 모른 채 냠냠하며 기분 좋게 먹는다. 그러다가 일어나면 배가 엄청 부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뇌도 기분이 좋아 단기간에 망각을 일으키는 서번트 물질을 퐁퐁 샘솟게 해서 배부름을 모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몸은 정직하나 뇌는 허구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에게는 절제라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금세 살이 찌고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특히 요즘처럼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남들이 먹는 것을 보고 만족하면 그만이지만 맛있게 먹는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서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편의점에는 매달 새로운 신상이 쏟아지고 유튜브에서는 매달 그 사실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어떤 제품이 나왔으며 새로 나온 제품의 맛을 리뷰한다. 조깅하고 오는 길에 야시장을 지나쳐와야 하는데 늘 맛있는 냄새를 폴폴 풍긴다. 오징어 굽는 냄새, 스테이크, 닭꼬치, 순대볶음, 떡볶이, 매운 어묵, 국물 호로록 거리는 소리. 조깅을 하면서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정도다.
그나저나 삼 시 세끼가 정해진 건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농사를 짓는 시기부터가 아닐까. 농사를 처음 지었을 때 곡기만으로 밥을 먹기가 힘들어서 장을 담그고 밥에 된장을 찍어 먹기 시작한 것이 간이 있는 음식의 시초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세 끼를 챙겨 먹으려는 건 아니다. 독일도, 미국도, 일본도 모두가 원칙적으로는 하루 세 끼다. 나라 간의 교류가 없던 시대에도 인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 끼를 챙겨 먹었다. 그때는 아마도 하루에 다섯 끼를 먹어도 허기가 졌을 것이다. 서민들은 주로 농사일을 지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노동을 많이 해야 하니 먹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끼니를 꼬박 챙겨 먹기가 버거워졌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인간의 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음식의 다양화로 인해 인체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어서 조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 세 끼만 먹으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자기도 모르는 새 음료와 간식을 또 먹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먹지 않거나 간단하게 먹는 사람들이 늘었다. 현재에는 하루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심지어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던 아버지들도 이제는 그렇게 먹지 않고, 그렇게 먹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만약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가정식단부라는 부서를 만들어 각 가정의 식단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지 않는 집에는 1차 벌금, 2차 벌금, 3차 징역으로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만들어 국민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집에는 보조금이 들어갔으며 보조금을 받고 세 끼를 챙겨 먹지 않으면 모든 보조금이 끊기고 받은 보조금의 세 배에 달하는 돈을 범칙금으로 내야 한다. 세 끼를 챙겨 먹지 못하는 빈곤층을 겨냥해서 만든 법이었다. 법을 만들고 처음 4개월 동안은 세 끼를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간섭하지 않던 정부는 법으로 정해놓으니 세 끼를 라면으로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라면의 소비는 더 올라가고 가계의 기본구조가 망가지는 가정이 점점 불어 나면서 사람들은 세 끼 법은 잘못되었다고 시위를 하게 되고 정부는 더욱 고압적으로 시민을 고립시키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재미있겠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치우고, 어떻든 현실을 뚫고 맛있는 닭가슴살이 들어왔다. 원래의 가슴살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이렇게 맛있어져 버리면 또 찾아서 먹게 될지도 모른다. 간편하고 먹기 쉽고 맛도 좋고 깔끔하다. 밥과 함께, 술안주로도 좋다. 이렇게 먹다 보면 그냥 찌개에 배부르게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면 애초의 퍽퍽한 닭가슴살을 찾는다. 닭가슴살의 변화는 가슴살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으로까지 왔다.
삼겹살을 보면 삼겹살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된장 삼겹살이 나와서 건강과 직결된다는 광고를 했었고, 항아리 삼겹살, 와인 삼겹살이니 금가루 삼겹살이니 많은 변화를 거친 삼겹살이 나왔지만 지금은 다 없어지고 그저 본연의 삼겹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연의 맛이 맛있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먹던 삼겹살에는 추억이라는 맛이 하나 더 입혀졌기 때문에 여전히 맛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닭 가슴살도 그렇게 될까. 하지만 사람들은 퍽퍽한 가슴살은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