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28. 2021

런던 팝에서 14

단편 소설



14.


 런던 팝을 나가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노래에 젖어들었다. 디제이는 제니스 조플린의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이런 기분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앞의 큰 화면에서는 제니스 조플린이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알이 박혀 있는 청바지를 입고 팔목에 주렁주렁 팔찌를 차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유를 노래했다. 제니스 조플린의 그 광기 어린 목소리는 자유였다.


 유튜브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마치 극장에서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룰 지으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앉은 줄 저쪽에서도 영상에 집중을 하며 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갓 스무 살쯤, 아니 그보다 더 어리게 보이는...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는 내가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을 닮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사람이 맞다고 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그 사람은 내 친구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그 녀석의 시체를 봤다. 그것도 부패한 모습의 시체를. 액체화 되어가는 모습을.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앉아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넘길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 녀석은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늘 내 옆에 붙어 있어서 나는 그 녀석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고2 정도가 되면 남학생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사춘기 냄새가 나고 코밑과 턱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중학생이 되면 남자들은 으레 그런 기미가 보인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머리칼과 약간의 눈썹을 제외하고 얼굴에 털이라고는 전혀 나지 않았다. 녀석은 목소리마저 굵지 않았다. 그래도 작지 않은 키에 공도 잘 찼고 팔씨름도 하면 대부분 아이들을 이길 만큼 힘이 좋았다. 하지만 몸에 근육 같은 것은 없었고 옷도 남학생 치고 아주 세련되게 입고 다녔다.


 녀석은 공을 잘 찼기에 아이들이 서로 자기편에 넣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겨울에만 공을 대체로 찼다. 여름에는 공을 차지 않았다. 땀이 나고 더워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복도 수선집에서 수선을 하여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입고 다녔다. 간단한 수선은 녀석이 직접 했다. 집에 재봉틀이 있어서 친구들은 녀석에게 수선할(기능적이 아닌 패션으로) 일이 있으면 맡기곤 했다.


 녀석의 손을 거치면 어설퍼 보이지만 교복은 그것대로 멋이 되었다. 실내화에도 자수로 이름을 새기고 다녔을 정도로 그 방면으로는 재주가 뛰어났다. 소풍을 가면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었고 노래방에서도 한 키 높여서 노래를 불렀다.


 이름은 치론이었다. 이치론. 치론이는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는데 내 뒤에 앉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대체로 한가하여 대학교 앞에 있는 워터 덕에 자주 갔는데 어느 날 치론이도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워터 덕에서는 주로 팝을 틀어 주었는데 치론이는 팝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고 나는 제니스 조플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녀석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이후로 치론이는 내 주위에 주로 머물렀다. 나는 이미 수염이 나기 시작했으며 면도를 했고 다리의 털도 거뭇하게 나 있었다. 그에 비해 치론이는 다리에 털이 전혀 없었고 얼굴이 아주 깨끗했다. 주말에 워터 덕에 가게 되면 치론이는 옅은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얼굴이 여자 같았다. 그건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옆에서 어떤 일을 수습하는 역할을 하는 신비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런던 팝에서 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