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주위의 풍경
사진이 그림처럼 너무 예쁘다. 저녁 7시경, 오월의 모습이다. 이런 색감과 이런 잔잔함과 이런 고즈넉 과 강물 위의 이런 실루엣은 딱 이맘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 미미하게 번지듯 퍼지는 보색 대비의 색감이 이렇게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일상에서는 일탈만큼의 특별한 자유는 없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늘 있다.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커튼과 자주 가서 마시는 커피의 향과 주인과의 눈인사. 저녁이면 늘 달리는 곳의 소소한 변화가 일상을 반기고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 또한 쏠쏠해서 비슷하지만 다른 기분을 가진다.
이 코스모스처럼 보이는 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서 찾아보니 코스모스가 맞다. 여름이 지나야 피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경종 같은 것을 알리려는 것일까. 코스모스가 5월에 피는 이유를 찾아보면 과학적으로 이유가 분명하게 있지만 지금은 그저 제철을 잊어버리고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 코스모스만 이야기하자. 코스모스는 아마도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고 예쁘다고 칭찬받는 봄에 피는 꽃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모두가 활짝 피는 봄에 특별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모든 꽃들이 그저 우르르 만개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눈에 띄는 꽃들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그럼에도 모든 꽃들은 봄에 피기를 간절히 바랐다. 코스모스도 가을에 얼굴을 내보이기보다 봄에 사람들 앞에서 자태를 뽐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조금씩 조금씩 계절을 앞당긴 건 아닐까.
이름 없는 들꽃아,
모두 피는 봄에 같이 피지 못 한다고
슬퍼하지 마라.
설중매는 홀로 설원에서
꽃을 피우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이 샛노란 꽃도 코스모스인 줄 알고 아름답네, 예쁘네 같은 생각을 하다가 검색을 해보니 금계국이라는 꽃이었다. 국화의 한 종류라고 한다. 금계국이 강변에 이렇게 활짝 필 때면 흐린 날도 아름다운 날로 탈바꿈시킨다. 꽃의 노란색은 원색에 가까운 노란색이다. 우리가 보통 눈으로 보는, 그러니까 가시광선을 통해서 보는 색감은 모두 컬러가 섞여있다. 검은색도 실은 검은색이 아니며 노란색도 노란색이 아니다. 하지만 꽃이 지니고 있는 노란색은 그야말로 노란색이다. 원색에 가까운, 쨍하고 깨끗한. 순수한 노란색에 가깝다. 그래서 디지털 이전 필름 회사들은 이 꽃이 지니고 있는 노란색에 가까운 색감을 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래서 코닥 필름이 긴 시간 동안 필름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노란색 꽃이 예쁘게 나온 건 근래의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다이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한 재경이가 찍은 다이의 노란 꽃이다. 아이들도 예쁘고 영화 속 사진 속의 꽃도 예뻤다. 금계국이 이렇게나 활짝 피어 있을 때 강변으로 가자. 강변으로 일단 나가면 재미있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저메키스 감독의 폴라 익스프레스는 믿음에 관한 내용이지만 주인공 소년이 그 기차를 타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발점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깅을 하다가 한 동네를 거쳐 오다 보면 오래된 빌라의 색감과 노을 진 구름의 색감이 비슷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 빠진 빌라의 벽의 불그스름한 색감과 아직 제대로 붉은빛을 발하는 계절이 오기 전의 노을의 색감이 비슷하다. 딱 이 정도의 색감이 좋다. 여기서 더 붉어진다면 영화를 너무 봐서 그런지 꽤나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6월이 지나 7, 8월의 저녁 시간에는 붉은 노을이 아니라 빨간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금계국이 피기 전의 사진이다. 위의 금계국이 핀 곳과 같은 곳인데 금계국이 없는 강변이 슬펐던지 역시 하늘에서 미미한 붉은빛을 띠운다. 나를 보며 따라와, 그러면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닿을 수 있을 거야. 정말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그곳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마스크를 쓰고 조깅을 하는 건 정말 짜증이 난다. 마스크 안에 찬 땀이 케이 에프 94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마스크 안에 세균이 번져 수포가 바글바글 생겨 탁 터지면서 그 안에서 꾸물꾸물.라는 상상을 해봤다.
길거리 오브제를 만났다. 이제 못 쓰게 되어 버려진 청소기를 바라보는 벽화는 이제 너는 쓸모없는 놈이구나. 라며 핀잔을 준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 로봇 청소기는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새로운 고성능 로봇 청소기가 들어옴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마치 오래전 영화 아이로봇에서처럼 헌 것들은 새 것에 의해 버려지고 찌그러져 한낱 쓰레기가 될 뿐이다. 벽화의 그림은 우리도 원래 쓸모없는 놈이었어. 자 이제 우리와 함께 가자, 이 문을 열고 우리와 함께 가는 거야,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네가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있어, 모두가 널 좋아할 거야. 그래서 다음 날 청소기 주인은 쓰레기차에 분리수거를 하려고 나가보니 로봇 청소기도 없고, 그림의 벽화도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