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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5. 2021

맛있는 도루묵

음식 에세이

도루묵에 대해서 찾아보면 조선까지 올라간다. 유명해서 이제는 다 아는 도루묵 이야기. 선조 임금이 피난길에 은어를 먹었는데 너무 맛이 좋아서 후에 다시 먹어 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 했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도루묵이라 불리는 도루묵을 우리 집에서는 조림으로 많이 먹는다.


커서 생각해보면 조림보다는 전어구이처럼 구워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구이를 해 먹고 나면 그 연기와 뒤처리가 엉망진창.


조림으로 먹으면 좋은 것은 무를 같이 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가 도루묵의 맛과 양념을 듬뿍 빨아들여 아주 좋은 맛을 낸다. 무는 조림을 만나서 정말 다양한 맛을 낸다.


도루묵 조림은 어린 시절에는 썩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도루묵은 아버지가 좋아했다. 제철이 겨울이라 겨울의 어느 날 퇴근한 아버지는 후후 손을 불며 들어와 씻고 밥상에 앉는다. 냄비 뚜껑을 열면 연기가 올라오며 조림의 향이 방안에 감돈다. 가시가 많아서 어릴 때에는 거들떠도 안 보는 생선인데 아버지는 일일이 발라서 동생과 나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밥반찬이었던 도루묵 조림은 이제는 어엿해져서 맥주나 와인 안주로 먹고 있다. 도루묵이 요즘에는 잔잔하다. 그래서 어쩌면 그냥 먹기가 더 편한 것 같다. 가시도 그냥 잘근잘근 씹어서 먹으면 된다. 조림 맛이 처음에 나지만 뼈를 계속 씹다 보면 고소한 맛도 많이 난다.


우리는 말짱 도루묵이다.라는 말을 한다. 꽝이라는 말이다. 근데 위의 어원처럼 도루묵은 도로 갖다 놔라, 뭐 이런 의미처럼 들린다. 말짱 도루묵이다는 말은 어쩌면 원래의 것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아버지와의 도루묵 조림을 먹는 시절이 그리워서 그때를 추억하며 현재의 도루묵을 먹을지도 모른다. 실컷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면 참 기운 빠지지만 다시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는 또 두 배의 기쁨을 맛볼지도 모른다.


말짱 도루묵이라서 좋다. 그런 음식도 도루묵이 처음이고, 추억의 맛도 떠올리고 안주로도 딱 좋은 도루묵 조림을 오늘도 오물오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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