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기시감이 드는 날이었다. 초여름, 움직여도 땀이 나지 않는 밤. 이맘때가 되면 시에서 주최하는 축제가 주말마다 온 거리를 장식하고 사람들이 몰려나와 삼삼오오 축제를 즐겼다. 시간제한을 두고 자동차의 통행을 막고 그 거리를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물든다. 사람들은 홍조를 띠고 아이를 데리고, 연인끼리, 친구들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에 스며든다.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행사에 참여하는 업체나 사람들이 오전부터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그리고 축제 기간 중 하루는 불꽃놀이를 했다. 축제를 시작한 지는 십 년이 안 되었지만 불꽃놀이는 역사가 있다. 내가 있는 도시에서도 매년 유월이면 불꽃놀이를 했다. 아마도 70년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되었다. 어떤 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옆에서 같이 보는 사람이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의 공터에 저녁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할 시간이면 모두 나와 자리를 잡았다. 이미 자리를 잡고 거하게 술이 취한 아저씨들도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삼사십 분 정도 우리는 불꽃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마법의 황홀 속으로 빠졌다. 불꽃놀이가 하는 날이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동네 통장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알려주고 동네의 빈 공터로 나와서 구경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불꽃놀이를 보는 것을 즐겼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 닭을 먹는 사람, 도넛을 먹는 아이들. 모두가 그날 하루는 즐거운 축제인 것이다.
아버지는 그날은 회사에서 일찍 와서 동생과 나와 함께 불꽃놀이를 꼭 봤다. 공터에 나가면 모두 삼삼오오 모여서 불꽃놀이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 8시면 하늘이 형형색색의 온갖 형태로 변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 바로 직전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 내심 흥분했다. 동네 친구들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동생을 목마 태워서 불꽃놀이를 구경시켰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불꽃을 보는 꼬꼬마 동생은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그런 동생을 목마를 태운 아버지 옆에는 나와 엄마가 자리를 함께 했다. 가장 이상적인 행복한 추억이다. 그런 잠깐의 행복한 시간의 추억으로 긴긴 행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견뎌낸다.
불꽃놀이는 사람들의 저 깊은 내면에 꼭꼭 추억으로 잘 숨어있다. 불꽃은 하늘로 피어올라한 점이 되어 무화되는 순간 수만 개의 꽃잎으로 흩어져 기억이 된다. 불꽃놀이의 불꽃은 사진을 찍어 놓지 않으면 기억이 전혀 없다. 불꽃에 대해서 아무리 기억을 하려 해도 불꽃놀이 자체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불꽃의 사진을 보더라도 그 불꽃이 그 불꽃이고, 이 불꽃이 이 불꽃같아서 한 번 정도 불꽃이 예쁘군. 하고 만다. 불꽃놀이를 기억하고 또 돌아오는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건 불꽃놀이를 함께 보러 가는 사람 때문이다. 대부분 가장 사랑하는 이와 동행한다. 그래서 불꽃은 기억에 없더라도 그때 불꽃놀이는 누구와 함께 갔다는 추억은 하게 된다. 허니와 클로버에서 아유의 골 때리는 아버지가 하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불꽃놀이는 말이야
불꽃의 색이나 형태는 기억하지 못해도
불꽃놀이의 날 누구와 보냈는지 만큼은
계속 생각나서 추억이 되니까
불꽃은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곁에 있는 녀석의 얼굴은 잊어버리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보는 거지
불꽃은 평생 불꽃놀이만 그리다 죽은 화가 야마시카 기요시의 작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 줄기로 끓어오르는 욕망이 꼭짓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맞이하는 순간 수십만 개의 불꽃으로 무화되어 사라지는 삶, 그것이 불꽃의 삶이다.
야마시타는 지적 장애가 있었고 세 살 무렵 고열을 앓은 다음부터 걸음걸이도 불편했다. 자연, 자라면서 이지메가 따라왔다. 소년 야마시타 기요시는 그를 괴롭히는 급우들의 물건을 숨기거나 강에 빠뜨리는 식으로 복수했다고 전해진다.
미술은 그가 유일하게 '수'를 받은 과목이었고, 수공예나 농원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낙이었다. 말 없는 친구인 꽃과 곤충을 정밀 묘사하는 동안에는 사납게 일렁이던 소년의 마음이 잔잔해졌다. 이 부분에서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카타 상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기억을 저쪽 세계에 두고 오면서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나카타 상.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에 그에 대해서 잘 나와있다. 야마시타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우표, 포장지, 지폐, 색지 등을 잘게 찢어 붙이는 특유의 기법은 학창 시절 이미 완성됐다. 고흐에게 꿈틀거리는 필적이 있었다면 야마시타에겐 손으로 일일이 뜯어낸 종잇조각이 있었다고 한다. 손으로 찢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집중이 필요하다.
18세에 방랑을 시작한 야마시타는 밥을 얻어먹고 마을을 떠날 때면 작품을 남기곤 했다. 도시락 뚜껑, 쟁반, 밥주걱, 부채 등 검소한 서민의 살림살이가 모두 그의 화폭이었다. 1971년 7월 10일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올해 불꽃놀이는 어디로 갈까?"였다고 한다. 야마시타의 머릿속은 전부 불꽃놀이로 가득 차 있었다. 카타르시스가 곧 죽음이 되는 불꽃에 어떠한 무엇인가를 분명히 본 것이다. 야마시타는 불꽃놀이를 화폭에 옮기면서 자신이 바로 불꽃으로 투영된 것이다.
유월이면 곁에 있는 이와 불꽃놀이를 보러 강변으로 나갔는데 코로나가 이런 소박한 삶을 가져갔구나.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맞이하는 불꽃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황홀하고 미쳐버린 것 같은, 미치고 싶지만 미쳐지지 않는, 그런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같은 불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시를 적어 보았다.
제목: 불꽃이 피어나는 시간
피융하며 집요하게 끝으로 오르는 찰나
소멸하는 삶과 새로운 세상을 만나려
태어나는 삶
세상을 만나 무화되는 그 시간
우리는 사정없이 버려지는
순간을 함께 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