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요즘 온열질환을 조심하자
엊그제 올해 들어 처음 에어컨을 틀었다. 28도에 바람세기를 가장 약하게 했는데도 나는 좀 추워서 홑이불을 덮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더위에 적응이 되어 있던 모양이다. 잠을 잘 때에는 에어컨을 끄고 자는데 새벽이 되면 덥다. 그러다가 오전 8시 정도가 되면 또 괜찮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53
어제는 새벽에 더워 깨어나서 좀 멍 한 상태였는데 그대로 일어나서 하루를 보냈다. 이런 낯선 몽롱한 상태를 느끼는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다. 마치 오래전 한, 몇 년 전에 밤새 술을 마시고 그다음 날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약간 머리가 띵하며 눈은 감기는 거 같은데 잠은 또 오지 않고, 아무튼 아주 좋은 컨디션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깅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서 쉴까 하다가 조깅을 하기 위해 환복을 한 다음에는 평소보다 더 신나게 달렸다. 더 신나게 달린 이유는 강변으로 나가니까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폭염이라 노인들은 외출을 삼가라는 방송이 여기저기서 계속 나왔지만 저녁 6시가 넘어간 강변의 조깅코스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시원해서 가을 날씨 같았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나와서 운동을 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어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날이었다. 그래서 신나게 달렸다. 한 20분 정도 달렸는데 내 앞에서 달리던 남성이 느닷없이 쓰러지는 것이다. 쓰러지는 그 장면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옆으로 푹 꼬꾸라졌다.
바로 뒤에 있던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마도 온열질환으로 탈수증 같았다. 그늘로 옮기 다음 119에 연락을 해다. 전화를 했을 때 119에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의식은 있는지, 숨은 쉬는지, 등등.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해 놓고 길가로 나가서 구급차가 오면 신호를 해서 쓰러진 남성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남성은 서른 살 후반에서 사십 초반으로 보였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후에는 몹시 아파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너무 힘들어했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얼굴에서 풍기는 그 고통이 마치 나에게로 옮겨 붙어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비록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그 엄청난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곧 하나둘씩 모여든 어르신들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르신들은 나에게 쓰러진 남성과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만 네 번 정도 했다.
구급대원에게서 연락이 왔고 나는 길가에 서 있다가 수신호를 보내고 구급대원들은 내려와서 쓰러진 남성에게 응급치료를 했다. 나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다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 하시던 운동을 계속하셔도 된다며, 자리를 피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종의 공감대에서 걱정과 간섭의 중간을 오고 가는 모습들이었다.
나는 구급대원들이 와서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조깅을 코스를 달렸다. 그 난리통에 한 30분을 그 자리에 있었다. 날은 정말 시원했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많이 나왔다. 이 여름에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것은 남녀노소를 구분 짓지 않는다. 쓰러진 분은 분명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것에는 그런 구분이 없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 여름을 잘 나는 방법은 늘 하는 말이지만 더위를 즐기는 것뿐이다. 인간이 계절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더위에 일단 적응이 되는 몸으로 만들면 그다음은 좀 수월하다. 내가 있는 곳은 바닷가라 누군가 놀러 온다고 하면 긴팔이나 덮을 수 있는 큰 수건이나 큰 타월을 준비해라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 이런 폭염에 무슨 소리냐,라고 하지만 바닷물은 생각 이상으로 차갑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닷바람에 입술이 정말 새파랗게 변한다. 그때 얼어버린 몸의 체온을 되돌리지 않으면 여름에 걸리는 질환에 걸리기 십상이다.
일단 여름에 길에서 쓰러지면 어떻든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직은 그게 나는 창피하다. 사람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몰려드는 것이지만 사실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잘 없다. 어떻든 여름에는 물을 자주 마시고 적당한 운동으로 더위에 적응시키자. 그리고 때가 된다면 하루에 몇 분씩 태닝을 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맥주를 좋아하지만 근래에는 잘 마시지 않았다. 맥주를 마셔도 한 캔 정도를 마실 뿐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이 지속될 때는 술과 야식을 피하는 것도 좋다.
감염병만 아니었다면 여름이면 바닷가 퍼브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늘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언젠가 또 그런 여름을 맞이하겠지. 그때까지 여름에 적응 잘할 수밖에는 없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유재하의 노래는 노을이 지는 집 앞 바닷가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들으면 참 좋다. 유재하는 당시 자신의 앨범에 클래식을 접목하는데 고민이 아주 많았다. 이전에 누구도 해보지 않았기에 부담이 컸다. 유재하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유재하의 노래를 조용필이 먼저 불러 앨범에 싣기도 했다.
유재하는 자신의 앨범에 사랑하는 그녀의 클라리넷 연주도 같이 집어넣었다.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로 음을 잘 살린 다음에 클라리넷, 플롯, 오보에의 관악기로 디테일을 살렸다. ‘지난날’에는 장조에서 단조로, 단조에서 장조로 계속 변화해서는 안 되는 변조를 사용한다.
유재하는 자신의 목소리에도 고민이 많았다. 조용필처럼 감성이 풍부하지 않고 김현식처럼 힘이 있지 않아서 늘 고민이었다. 그해 7월 괌에서 발달한 태풍 셀마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기상청의 잘못된 진로 판단과 오보로 재해가 엄청났다. 셀마는 소멸했으나 집중호우가 가져온 피해는 굉장했다. 농경지가 침수됐고 주민들이 3주 이상 외부에서 지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어수선한 여름의 분위기를 뒤로한 채 유재하는 그 해 8월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다. 같은 해 11월 1일 새벽, 플루트를 전공하던 애인을 남겨둔 채 강변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그때 유재하 나이 25살.
62년 서울 출생.
한양대 작곡과 81학번.
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
86년 김현식과 봄여름 가을 겨울에서 활동.
87년 8월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발표.
87년 11월 사망.
그의 짧은 이력에 비해 음악세계는 무척 깊고 풍부했다. 신승훈은 유재하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사랑하기 때문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열악했던 대중가요에 풍성한 클래식 반주를 도입하고 기존 대중음악의 벽을 뛰어넘은 유재하의 노래는 80년대 말 암울했던 대학가와 젊은이들에게 이슬비와 같은 촉촉한 정서를 심어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