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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27. 2021

귀여운 여인 [마지막]

영화를 다시 소설로

 에드워드의 눈빛에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공허한 표정이 스며있었다. 에드워드를 처음 봤을 때 좋은 옷감으로 만든 고급 정장과 긴 팔다리에 좋은 피부와 은은한 향이 기분 좋게 번지고 말투에 매너가 서려있어서 같은 인류인지 의심이 가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이 지내는 동안 에드워드는 모두와 다를 바 없는, 나와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에드워드라는 그 사람 자체가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모스의 회사를 빼앗지 않아서 기분이 편안하다고 했을 때 에드워드의 안도감이 내가 만질 수 있을 만큼 생생해서 나는 정말 기뻤다. 이 남자는 냉철한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칼을 빼들고 달려올 기사였다. 나는 며칠 만에 에드워드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일련의 희로애락이 눈썹이나 입술로 살며시 드러나는 얼굴. 무엇보다 키스를 할 때 한없이 아이 같은 순수함을 담은 에드워드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자마자 헤어진 나는 정말 바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루카에게 샌프란시스코에 같이 가자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고 공부도 하고 원하는 일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루카는 이곳이 좋아서, 이곳의 냄새가 자신의 몸에 깊게 배어 갈 수 없다고 했다. 루카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의 루카.


 루카가 나가고 짐을 챙겨 나가려고 보니 집안의 물품들이 평소 내가 보던 모습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시끄럽고 소음이 가득한 방을 가득 채우던 낡은 물건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지 소리가 싹 걷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멎은 것처럼 보였다. 이젠 정든 것들에게 안녕을 고해야겠다.


 문을 나가려는데 창밖으로 오페라의 아리아가 들렸다. 그건 에드워드와 함께 봤던 그 오페라였다. 창문을 여니 거짓말처럼 에드워드가 손에 칼과 방패를 들고 멋진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오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어쩌면 그에게 고소공포 같은 것이다.


 그는 고소공포를 이겨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늘 피해왔던 고소공포를 끌어 안고 계단으로 한 발 한 발 올라올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마음을 느꼈다. 에드워드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소공포를 받아들이고 계단으로 올라와 나에게 양팔을 벌렸다. 동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기사님을 안고 키스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순간보다 안 좋은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우리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잠깐의 좋은 순간으로 구체적이고 딱딱한 불행의 시간을 이겨내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지금은 에드워드를 꼭 안고 그와 키스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사랑 그게 눈에 보이기나 할까.

 사랑을 하는 순간 사랑 자체가 상처다.

 이제 에드워드와 상처 속으로 뛰어든다.


 사랑해요 에드워드.


[끝]




귀여운 여인 OST - It must have been love https://youtu.be/p0MdP8Ke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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