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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13. 2022

하루 중 가장 좋을 시간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


이렇게 추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밖은 몹시 춥고 내가 있는  안은 아주 따뜻해서 창밖의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함이 드는, 커피를 홀짝이며 흘러나오는   없는 음악을 듣는 오전의 시간이 아주 좋다. 하루  오전 10시에서 11 30 사이의 시간이 하루  제일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라디오를 들으면 오전의 디제이들이 오전에 어울리는 멘트를 마치 친구처럼 한다. 커피를 마시며 맨하탄스나 시카고의 음악을 들으며 창을 투과하는 햇빛에 잠시 졸음에 겨워 노곤함이 들다가 오래된 팝에 추억에 젖기도 한다.  시간에 나오는 음악은 소녀스럽다. 요란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고 들으면 미소 짓게 한다.

 


이 시간이 더 좋으려면 아직 이불 안이어야 한다. 창으로 바람이 와서 부딪혀 비명을 지르고 커튼을 조금 걷은 창으로 해가 들어와 방 안에 요만큼의 자리를 만든다. 햇빛 따위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이불 안에서 몸을 말고 오전 9시부터 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미미하게 잠에서 깨었다 들었다 한다.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나직하게 멘트를 한다. 나는 몸을 한 번 옆으로 뒤집는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이불에 닿는 감촉이 좋다. 디제이는 오전에 계란 프라이를 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기름에 계란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을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지글지글 계란이 부풀어 오르면 노른자를 깨트리지 않고 밥 위에 올려 맛간장을 위에서 몇 방울 떨어트려, 까지 말했을 때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곧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 나온다. 그러면서 나는 기반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다.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경. 험.을 하지 않고서는 가사를 만들 수 없다.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다.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다르다.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다. 그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의 관념은 달라진다. 거기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왕왕한다.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기반이란 계란 프라이 같은 기. 본. 반. 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는 것이 기반이 좀 잡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기본 반찬을 매일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은 불안하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해지는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해지는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떨어트려 놓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야 ‘ㅁ’이 ‘ㅇ’이 되어 사람은 사랑이 된다. 삶이란 하루를 삶아 가는 행위가 모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난다.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다.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다.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온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걸.


이상은의 노래가 끝이 나고 팝이 나온다. 러쉬러쉬다. 폴라 압둘의 노래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아주 젊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다. 물론 폴라 압둘도 예쁘고 섹시하다. 어린 키아누 리브스와 폴라 압둘의 사랑 이야기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다. 아침에 이불속에서 듣기에 좋은 노래다. 오전의 디제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까지 집에 있다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시간을 이렇게 즐기는 건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 시절까지 간다. 겨울방학이면 늦게까지 잠을 잤다. 라디오를 달고 살았기에 오전의 라디오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멘트와 노래를 들으며 오전 10시를 즐긴다. 그때에도 오전의 그 시간에는 팝이 흘러나왔다. 비틀스가 나왔고, 라이쳐스 브라더스가 나왔고, 건스 앤 로지스의 패인션스가 나왔고, 머틀리 크루의 홈 스위트 홈이 나왔고, 마이클 볼튼이 나왔고 리처드 막스가 나왔다. 그때 들었던 팝들을 지금도 지치지 않고 듣고 있다니.


오전에 듣던 음악을 오후에 친구와 만나 팝에 대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 앨범을 들고 와서 하나씩 교환해서 들어본다. 녀석은 핑크 플로이드를 들고 왔다.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데이빗 길무어가 이끄는 핑크 플로이드 야. 하며 나에게 들어보라며 준다. 나는 제랄드 졸링을 준다. 녀석의 눈빛이 변하며 뭐지? 왜지? 같은 말을 계속 내뱉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메탈리카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메가데쓰를 만들어 록을 박살 내는 데이비드 머스테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히스테리아 앨범을 세계적으로 팔아치운 록의 전설 데프 레퍼드의 드러머 릭 엘런이 교통사고로 팔이 한쪽 잘려 나가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기 일쑤다.


내가 사진부라서 우리는 학교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 몰래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음악을 들었다. 암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캡틴큐나 소주를 홀짝이며 듣고 싶은 팝을 열심히 들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면 단골 투다리에서 술을 마시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도대체 몇 살 때부터 마신 것일까. 우리는 XX여고 문예부 아이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서 그 애들과 일주일에 삼사일은 같이 보냈다. 사진을 찍고 인화 작업을 하고(흑백 사진은 물약 두 개로도 인화가 가능하기에) 사진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각 학교의 교지에 들어가게 편집을 했다. 그런 작업을 어딘가에 모여서 해야 한다. 단골집을 만들어야 했고 자주 가는 카페와 투다리와 카나리아 통닭집에서 우리는 맥주나 소주를 마시며 작업에 매달렸다. 일종의 거창하지 않은 사교모임인 것이다. 우리의 모임을 부러워했던 몇몇이 끼었다가 대화에 가제보니, 제니스 이안이니, 귄터 그라스니, 하루키 따위의 시시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가버린 녀석들도 있었다. 모이면 겨울방학의 오전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불속에서 아코디언처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지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우리는 그런 데서 재미를 찾았다. 그 속에는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행복한 오전의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병실생활을 할 때 간이침대에서 선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면 9세의 기운 좋은 남자아이가 몽둥이로 여기저기 때린 것처럼 몸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일을 하러 나가는 사이에 라디오를 들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팝인데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마치 나의 비참함을 놀리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왔지만 그저 흘러가는 물에 종이배를 띄워놓은 것처럼 그렇게 시간을 따라 의식이 이동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중환자 가족이 지낼 수 있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 겨울이었다. 아버지가 12월 31일에 눈을 감았는데 그 주에 몹시 추운 한파가 몰아쳤다. 중환자 가족이 지내는 방은 마치 자연재해로 인해 동네 체육관이나 마을 회관이나 노인정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과 흡사했다. 그저 큰 방이 하나 달랑 있다. 보일러를 켜놔서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하게 추운 밖보다는 괜찮은 정도였다.


방의 저쪽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은 플래시를 켜서 공부를 하는 학생의 모습도 보였고 그 옆에서 엄마가 잠이 들어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마시는 가족도 있고 귤을 까먹고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도 있고, 할머니가 손주가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덩그마한 방에는 인터폰 전화기가 있었는데 그 인터폰을 받고 가족이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 반 이상은 그대로 집으로 갔다. 이미 인터폰으로 전화를 받을 때 반응하는 환자가족의 목소리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12월이라 중환자실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병원 밖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기였다. 12월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기에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과 더 가까이 붙을 수 있는 계절이 12월이다. 하지만 중환자 가족에게는 그 모든 게 사치다.


그 방은,

병원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현관 같은 곳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단을 올라가서 이불을 깔고 잠이 들면 된다. 나는 이불이 없어서 신발을 벗지 않고 신은 채 현관에 다리를 내고 겨울 패딩의 자크를 목까지 올리고 잠이 들었다. 말 그대로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가 되면 방안에 돌던 보일러가 꺼진다. 그러면 냉기가 온몸을 침투해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불이 없는데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손주가 덮었던 이불을 나에게 덮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 중환자실의 생활도 2주나 했다. 그때에도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 팝을 들으며 이 시기가 지나 다시 듣는 오전의 라디오를 행복하게 생각하리라. 그런 다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늘도 지디(정지영 디제이)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의 골든 디스크를 들으며 아아 좋은 시간이다.라고 생각을 한다. 악착같이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에 커피를 마신다. 샷을 추가한 텀블러의 커피를 홀짝이며 라디오를 듣는다. 삶은 여행이고 좋은 여행도 있고 기분 안 좋은 여행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 안에서 오전 10시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하루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라디오에서 반 헤일런이 캔 스탑 러빙 유를 부른다. 빠져든다.

https://youtu.be/K_LbrEJUYRw

Van Halen - Can't Stop Lovi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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