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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0. 2022

바람이 불어오면 24

소설


24.


 따뜻했다.

 종류가 다른 따뜻함.


 나는 본능에 가깝게 그녀의 가슴을 빨았다. 연약한 그녀의 몸은 곧 부러질 것 같았다. 서로 안고 있으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죄책감이 덜 들어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를 꽉 잡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를 했고, 귀에 키스를 했다. 그녀의 몸은 정말 부러질 것처럼 연약했다. 힘을 주면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목에 키스마크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그녀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눈을 뜨고 내 입술에 키스를 했다.


 기이한 느낌.


 이상 세계를 보는 느낌이 그녀의 입술을 핥았을 때 들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조금은 힘 있게 빨아 당겼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기를 모으고 힘을 줬었단 말인가. 들리지 않는 신음 소리가 그녀의 입을 통해서 건물의 실내로 흩뿌려졌다. 흩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소리였는데 공명은 그녀의 어딘가를 통해서 흘러나와서 실내의 대기에 흩뿌려졌다. 그럴수록 그녀의 삶까지 분해되어 사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눈을 떠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상기된 볼과 혀가 보이는 입과 반짝이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는 나의 얼굴 이곳저곳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녀는 희열과 동시에 비애가 얼굴에 묻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어째서 행복하게만 보여야 할 당신의 얼굴이 그렇지 않으냐고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그 순간 죽어버렸다. 나는 엉덩이를 뺐다. 그녀는 내 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벌어진 입으로 노랫가락이 나왔다. 노랫가락인지 알 수 없었다. 신음소리에 뒤섞여 노래가 흘렀다. 그녀가 내는 소리임은 확실했다.


 플라스틱 모조 지구, 고무로 만든 중국제 모조 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그 여자의 초록색 플라스틱 깡통,

 그 여자는 한 고무 인간으로부터 그 모조 식물을 샀지,

 자기 자신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피임계획들로만 가득 찬 한 도시에서 그것이 그 여자를 닳아 없어지게 하네.


 그 여자는 산산 조각난 남자와 함께 살고 있지.

 깨져버린 합성수지 인간인 그는

 지금 가루가 되어 불에 타 버리네.

 그는 과거 80년대에 여자들 때문에 성형 수술을 했었지만

 언제나 더 우세한 중력 때문에 그것은 그를 닳아 없어지게만 할 뿐이지.

 그 여잔 진품처럼 보여.

 진품 같은 맛도 나긴 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나의 가짜 사랑이여.

 하지만 나 이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어.

 천장을 뚫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등을 돌려 뛰쳐나가게 된다면 말이야.

 그 생각은 날 닳아 없어지게만 할 뿐이지.

 만약 내가 언젠가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


 라디오 헤드의 ‘페이크 플라스틱 트리’의 노랫말이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하나로 응결되고 압축된 서글픔의 노랫말이었다. 나는 그녀와 키스를 하며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그녀가 끝냈을 때 그녀의 눈과 내 눈에서는 눈물이 동시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물 맛을 보았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다시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기쁘다고 했다. 나는 그녀 덕분에 그녀의 끝에 닿아서 방출을 했다. 그녀는 정말 기쁘다고 했다. 나는 무엇이 기쁘냐고 물었다.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와서 기쁘다고 했다. 나 역시 기뻤다. 나는 지금 이 여자를 안고 있으면서 얼굴이 닮은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결락이 내 몸을 눌렀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녀도 내 여에 잠시 누워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선배의 그녀와 너무 닮았다.


 “아가씨는 그녀군요. 내내 의심했는데 분명하군요. 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누워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여인은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모습이라고. 지금이 분명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대답이 없어도 괜찮아요. 내 마음속에 그녀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거 말이에요. 나는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평소에 달리지는 않지만 나를 달리게 만드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요.”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제 우리는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그녀의 손은 말했다.

 “방금 불렀던 노래, 다시 한번 불러줘요”라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노래를 불렀다. 제대로 들으니 마음이 저 깊은 바닥에 가라앉았다.


 무거운 안갯속을 거니는 기분.

 그녀는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모조품적인 사랑을 나 역시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모습이 정말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부서진 관념의 모습일까.

 만약 그렇다면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일까.


  나는 불타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내 몸은 타이어 타는 냄새를 풍기며 불구덩이 속에서 연기를 내며 찌그러졌다. 진품은 가려진 채 모조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 역시 모조품 사랑을 하고 있었고 고무 인간과 함께 불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뇌에 들어찼다. 그녀가 노래를 한동안 계속 불렀다. 격정적인 부분이 있었고 고요하게 속삭이는 부분도 있었다. 그녀의 노래가 이어질수록 나는 자괴감에 더욱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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