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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31. 2022

고기를 구우며

사람은 모두가 뭔갈 숨기고 있어


내가 어린이 때 이맘때가 지나면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 일일 종종 있었다. 마당에는 평상이 있어 밥상을 들고 와서 평상에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특히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꼭 어딘가에 야영을 온 기분이 들어서 신났다. 고작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가며 저녁을 먹을 뿐인데 나도 신났고 동생도 신났고 마당의 깜순이도 신났다. 기껏해야 집 안에서 마당으로 저녁 식사를 옮겨왔을 뿐인데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마당에 있는 화단에서 벌레들이 일고 날파리들과 모기들이 출몰하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당의 불도 좀 더 환한 것으로 더 비춰야 했고 고기를 구워 먹는 불판도(전기로 구워 먹는)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선을 길게 연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고기를 굽는 냄새가 솔솔, 바람을 타고 옆집 뒷집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친하게 지내던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과 함께 온다. 마당이 시끌시끌해진다. 우리는 마당을 뛰어놀고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오지 않았기에 밤은 좋은 온도와 좋은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화덕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화덕에 숯을 넣고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불판을 올리고 직화로 고기를 구우면 그 향이 연기가 되어 집 주위의 모든 하늘에 머문다. 숯에 닿아 직화로 구워진 고기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친하게 지내는 옆집들에서 호박이니, 쌈장이니, 상추니. 이런 반찬을 들고 와서 하하호호 어울린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즐겁고 어른들은 술잔이 오고 간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깊어진다. 별거 아닌 하찮은 것들이 행복으로 바뀌어 유월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때 정말 그 시간이 좋았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그 당시의 아버지 자리였다면 나는 그 저녁 시간이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여름이 오기 전 오뉴월의 저녁에는 종종 그렇게 저녁을 먹었으니까 평일에도 마당에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새벽에 눈 떠서 멀리 있는 회사까지 가야 했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열심히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면서 회사에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해서 올 때에도 마찬가지다.  


옆집 가족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즐겁게 했지만 주로 어머니들끼리만 잘 아는 사이였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고 가끔 주말에 이발소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아는 척을 했다. 이발소에서 하나의 주제로 아버지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며 어울렸지 어머니들처럼 매일 나물을 다듬으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의 문제로 이야기를 친근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들은 가족들끼리 어울리는 자리가 대체로 어색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 말을 대체로 계속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가 술자리가 무르익어 깊어지면 아내에게 끌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어제 너무 마신 탓에 아침에 출근이 힘들었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속내를 거의 내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고통도 얼굴을 조금 일그러트려가며 참을 뿐이고 말을 아꼈다. 왜 그렇게 말을 아꼈을까.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다 하나씩 숨기는 뭔가가 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상처 입혀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늘 거짓말이 필요했어요.




파이팅 송을 듣자. 기괴한 마릴린 맨슨의. https://youtu.be/9GFI6Rf-IkI

아우 이 긁는 목소리 정말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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