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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2. 2022

라디오를 켜봐요 3

소설


3.


  그 방면으로는 재능을 보이는 여자였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서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 눈 팔지 않고 일에 몰두해야 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불만은 없다. 나는 대체로 수동적인 인간으로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에 적극성을 띠는 그런 타입이었다.


 무엇보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요즘의 상황에서 일이 넘친다는 건 생계에 타격은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고 사람과의 대면이 없기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도 당연히 없었다.


 4살이나 적은 여자와 함께 일을 하니 대표와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면 갑을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28살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간판업체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다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따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나 역시 홈페이지 제작회사에서 아이콘을 디자인하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활을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로 월급은 형편없었고 이제 이런 전문성을 띠는 분야들이 대중화가 되어서 사람들은 전문 업체에 일감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표인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같이 일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작업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 눈을 팔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도 같이 일을 하게 되면 하는 일이 많아질 거예요.”


  나를 보자마자 그녀가 한 첫 말이었다.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나를 몇 번이나 봤다고 했고 작업하는 스타일도 유심히 체크했다는 것이다. 어떻든 그녀와 일을 한지도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그녀는 5일 출근하는 동안 옷이 전부 달랐다. 그리고 옷은 깔끔한 정장 스타일이었다.


 헤어스타일도 늘 단정했다. 머리가 어깨 밑으로 흘러내렸고 아침마다 고대기를 열심히 말고 오기 때문에 뒤에서 봐도 헤어스타일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사무실에 있을 때에도 슬리퍼로 갈아 신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발이 아플 법도 했지만 갈아 신지 않아서 슬리퍼는 늘, 자주 안타까워 보였다. 책상 밑의 그녀 슬리퍼는 늘 정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그에 비해 나의 옷차림은 늘 비슷했고 청바지에 3일씩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회사라고 불리기에는 뭣하기 때문에 크게 복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옷차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머리를 감지 않고 나와서 모자를 눌러쓰고 작업을 했고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출근을 하면서 롯데리아에서 불고기 버거를 소스 없이 주문하여 들고 오거나 김밥을 배달해서 주로 먹었다.


 그녀와 일하는 회사가 좋은 점은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놔도 괜찮다는 것이다. 라디오는 막힘이 없고 멈추지 않고 노래를 들려준다. 좋아하는 노래는 하루 종일 들어도 고작 한 두 곡정도 뿐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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