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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3. 2022

라디오를 켜봐요 4

소설


4.


 가끔 회식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녀와 단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업체의 누군가가 늘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이렇게 로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회식을 하는 것 같았다.


 회식을 하게 되면 어떻든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기 때문에 나는 먹는 것에 열중하는 편이었다. 회식이 끝나갈 때는 거래처 누군가는 취해 있었고 그녀도 약간은 얼굴에 취기가 돌았다.


 “김 실장하고 정 사장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닌가?”


 거래처에서 나온 이상택 대표라는 남자가 술에 취해 껄껄거리며 말을 했고 그녀와 나는 서로 마주 보았지만 우리에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지 않았다. 이상택 대표는 우리를 아주 잘 봐주는 그런 인물로 넉살이 좋고 이 바닥에서는 잔뼈가 단단할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내 생각에 그 대표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거래처가 끊이지 않게 연결을 해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 그 대표는 그녀에게 도를 넘는 이상의 언행은 하지 않았다. 거래처의 대표가 취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마도 그녀가 그런 말을 해주기를 바라서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보이는 관심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이었다. 여름이 되면 그녀의 치마도 당연하지만 짧아졌고 민소매의 옷을 입었다. 그녀에게는 늘 이채롭고 좋은 향이 났고 손톱은 관리를 받기 때문에 정갈하고 깔끔하고 예뻤고 무엇보다 남자들이 바라는 손톱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일했던 업체에서도, 그리고 거래를 하는 업체에서도 그녀에게 남자의 소개가 많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늘 거절했다. 그랬던 그녀가 하루는 회식을 하면서 나에게 어떤 말을 했다.    


  누워 잠들기 전에 나는 늘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서 깊게. 그리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내가 왜 끌리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깊게 생각했다. 끌리지 않는다고 해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몸을 나눌 수 있지만 어째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생각을 했다.


 먼저 나는 그녀에 비해 초라하다는 이유를 갖다 붙였다. 외모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고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내가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에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보다 근원적인 부분이 있다.


  그녀는 한창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무 늙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무척 활동적이고 예쁜데다 세련됐고 하는 일에 대해서도 능률을 올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재능은 노력과는 거의 무관하게 타고난 편에 속한다고 봐도 된다. 대외적으로 능동적인 그녀의 모습은 살아있는 미술품을 보는 듯한 것에 비해서 나의 모습은 수면 밑에서 겨우 숨을 쉬며 서서히 움직이는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나’라는 인간이다. 그녀의 얼굴이 관심이 안 갈 정도로 생겼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가 거래처에 등장하면 몰래 음료를 숨겨놨다가 건네주는 신입 남자 직원이나 어떤 직원은 대놓고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의 얼굴이 예뻐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나는 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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