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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7. 2022

라디오를 켜봐요 8

소설


8.


  나는 연어 초밥을 씹어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어초밥은 심각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맛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연어초밥도 맛있다고 느꼈지만 제대로 된 초밥을 먹고 난 후에는 마트에서 파는 냉동 초밥은 이제 먹기 싫어졌다.


 “오빠와는 2년 동안 매일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남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성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혹시 오빠는 이반인가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빨리, 대체로 정리해서 대답을 해야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 생각에 빠지느라 대답을 재빨리 하지 못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여자를 당연히 더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여자와 봉크를 하는 문제에서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확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동전의 앞뒷면처럼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술을 많이 마셨고 결국 그녀를 부축해야 했다. 좋은 향이 났다. 나는 그날 밤 그녀의 말에 고민을 했다. 얼굴은 보기 좋으리만치 붉은 기가 돌았으며 입안에서는 와인 향이 그녀가 뿌린 향수와 손잡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 같이 지내는 건 어때요? 오빠라면 봉크를 허락할 수 있어요. 하지만 봉크가 아니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만족할만한 무엇인가를 제공할 것 같아요. 저는 그렇다고 이반은 아니에요. 그리고 오빠가 이반이라고 해도 저는 상관이 없어요.”


  그녀는 내가 그녀의 집에 바래다주기를 바랐다. 사회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해서 같이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까지 갔다. 그녀의 집은 택시를 타고 40분가량 가야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그녀는 나의 팔짱을 꼈다. 예전에도 누가 나의 팔짱을 꼈었다. 팔에 힘을 꼭 주고.


  티셔츠에 아무래도 그녀의 향이 스며들 것 같았다. 향이라는 게 향수의 것이라면 빨래를 하거나 씻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체취가 스며들면 그 향에 취해 곤란하게 된다. 근원적인 냄새에 도취되면 어떤 식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그녀는 어쩌면 늘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그저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누군가도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집은 꽤 컸다. 혼자서 살기에는 큰 아파트였다. 35평 정도 되는 집에 주방이 커서 홈바가 있었다. 이런 집은 드라마 속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를 방의 침대에 눕히려고 했지만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 엎어졌다. 몸이 낙지 같아졌다. 마음먹고 옷을 벗기려고 달려들면 그녀는 저항을 못할 것 같았다.


 저대로 두면 불편한 자세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필시 몸이 결릴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 서서 그녀의 꺾인 자세를 생각했고 그녀의 집을 둘러봤고 그녀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번에 세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나도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기는 싫었다. 나는 그대로 집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술에 취했지만 아직 정신은 있었다.


 “오빠,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이리 와서 절 좀 일으켜줘요.”라는 순간 그녀의 향이 확 짙어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녀가 혀를 내밀었다. 와인의 향이 혀에 감돌고 있었다. 우리는 가만히 키스를 하고 페팅을 했다. 그것으로 우리는 아주 만족을 했다. 그녀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시간이다.


 연예인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실수가 변명이 되면 실패가 되고 실수가 과정이 되면 실력이 된다. 나는 지금 변명을 하는 것일까 과정인 것일까. 그것들이 공존하는 시간 새벽 4시다. 집으로 올라와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라디오는 새벽에도 음악을 틀어 주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이 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가장 무섭다. 순수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건물의 창문으로 나는 어둡고 좁은 방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건물은 붉은색을 단단하게 지녔고 건축물이 지녀야 하는 정당함을 버린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웃음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 무엇인가가 건물 속에서 어두운 창문을 통해서 여기를 보고 있다. 그동안 애써 눌러왔던 그 시선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다. 건물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다. 그녀와 나는 오늘부로 비공식적이지만 정식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렇다고 변화가 될 것은 없었다. 20대 초반처럼 두 사람의 모습을 합일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먹는 것에도 강요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관심과 간섭의 경계를 잘 알았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면 된다. 서로는 암묵적으로 봉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봉크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라고 하는 것은 늘 나에게 있었다. 나는 과연 그녀를 나의 여자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 나에게 했지만 대답을 확실하게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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