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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5. 2022

라디오를 켜봐요 16

소설


16.


 하지만 그 사람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사람이 맞다고 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그 사람은 내 친구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그 녀석의 시체를 봤다. 그것도 부패한 모습의 시체를. 액체화 되어가는 모습을.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앉아 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넘길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 녀석은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늘 내 옆에 붙어 있어서 나는 그 녀석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고2 정도가 되면 남학생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사춘기 냄새가 나고 코밑부터 턱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중학생이 되면 남자들은 으레 그런 기미가 보인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머리칼과 약간의 눈썹을 제외하고 얼굴에 털이라고는 전혀 나지 않았다.


 녀석은 목소리마저 굵지 않았다. 그래도 작지 않은 키에 공도 잘 찼고 팔씨름을 하면 대부분 아이들을 이길 만큼 힘이 좋았다. 하지만 몸에 근육 같은 건 없었고 옷도 남학생 치고 아주 세련되게 입고 다녔다. 녀석은 공을 잘 찼기에 아이들이 서로 자기편에 넣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대체로 겨울에만 공을 찼다.


 여름에는 공을 차지 않았다. 땀이 나고 더워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복도 수선집에서 수선을 하여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입고 다녔다. 간단한 수선은 녀석이 직접 했다. 집에 재봉틀이 있어서 친구들은 녀석에게 수선할(기능적이 아닌 패션으로) 일이 있으면 맡기곤 했다.


 녀석의 손을 거치면 어설퍼 보였지만 교복은 그것대로 멋이 되었다. 실내화에도 자수로 이름을 새기고 다녔을 정도로 그 방면으로는 재주가 뛰어났다. 소풍을 가면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었고 노래방에서도 한 키 높여서 노래를 불렀다.


  이름은 치론이었다. 이치론. 치론이는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는데 내 뒤에 앉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한가하여 대학교 앞에 있는 워터 덕에 자주 갔는데 어느 날 치론이도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워터 덕에서는 주로 팝을 틀어 주었는데 치론이는 팝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고 나는 제니스 조플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녀석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 이후로 치론이는 내 주위에 주로 머물렀다. 나는 이미 수염이 나기 시작했으며 면도를 했고 다리의 털도 거뭇하게 나 있었다. 그에 비해 치론이는 다리에 털이 전혀 없었고 얼굴이 아주 깨끗했다. 주말에 워터 덕에 가게 되면 치론이는 옅은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얼굴이 여자 같았다.


 그건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옆에서 어떤 일을 수습하는 역할을 하는 신비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걸음걸이도 교양이 묻어 있는 여성이 걷는 모습이었고 웃을 땐 늘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지만 술을 잘 마셨고 힘도 세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나 소위 멤버들과 시내에 있는 ‘올 댓 재즈’에서 맥주를 마셨다. 두려운 것도 없이 교복을 입고 올 댓 재즈에서 맥주와 소시지를 씹어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소시지라고 해봐야 요즘처럼 좋아 보이는 모양의 소시지가 아니라 줄줄이 비엔나 같은 소시지였다. 우리는 줄줄이 비엔나를 사랑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학교 밴드부였고 내가 그들의 틈에 끼었는데 치론이도 내 옆에 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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