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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2. 2022

라디오를 켜봐요 24

소설


24.


  영덕에 도착했을 때 스포티지의 타이어에는 구멍이 났는지 바람이 빠져나가 타이어가 꺼져 있었다. 상혁이가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연락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차에서 내려 소변을 보고 스크류바를 하나씩 사 먹었다. 스크류바를 먹는 것도 모두가 스타일이 달랐다.


 빨아서 먹는 놈, 바로 와작와작 씹어 먹는 놈, 둘 다 같이 하는 놈. 주왕산을 벗어나 영덕에 도착했을 때 폭우는 그쳤고 구름 사이로 미미하나마 해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영해 터미널로 오래. 그곳에서 다시 전화를 달라는군.”라며 상혁이가 스펀지에서 물이 빠져나오듯 땀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서 영해 터미널로 향했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여니 자연의 기운이 물씬 들어왔다. 비 냄새와 흙냄새가 섞였다. 자연의 시원한 기운과는 다르게 에어컨이 꺼지니 더웠다. 더위에도 치론이는 계속 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찍찍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영해 터미널 근처에 도착했고 타이어는 기어이 펑크가 나 버렸다.


 “좀 기다리라고 하네.”


  상혁이가 여전히 땀을 물처럼 흘리며 친구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근처에는 기다릴 만한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효상이는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며 어딘가로 가버렸고 우리는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교상이가 손가락을 들어 저기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영해 다방’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다방이었다. 근처에는 오락실도 노래방도 치킨집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째 불안한 기운이 우리를 덮쳤다. 허름한 2층짜리 건물의 2층에 자리 잡은 영해 다방에 들어가서 생전 마셔보지 않았던 쌍화차와 냉커피를 골고루 주문해서 마셨다.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창문은 전부 열어 놓았다.


 다방의 마담은 50대로 어딘가에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있었고 틀어놓은 티브이에서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나 양이라고 불리는 다방 레지는 머리에 하이바를 쓰고 끝없이 배달을 다녔다. 우리 쪽을 보고 윙크를 한 번 한 것이 우리와 나 양의 마주침의 고작이었다. 치론이도 지쳤는지 냉커피만 홀짝 거렸다. 두 시간을 영해 다방에 꼬박 앉아 있었다. 마담이 재주문을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고 우리는 같은 음료를 다시 시켰다. 중간에 나 양이 잠시 우리 자리에 앉아서 떠들다가 갔다.


 “쌍화차 한 잔만 주문하면 배달을 가지 않아, 커피 두 잔을 시키면 배달을 가거든. 그런데 쌍화차 한 잔 가격이 커피 두 잔보다 더 비싼데 그래, 원래 그래. 여긴 다 그래.”라며 나 양은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마담이 신호를 하면 잽싸게 일어나 배달을 갔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하이바는 벗지 않았다.


  자동차 정비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던 효상이가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니”라며 더위를 몰고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서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상혁이는 15분마다 터미널에 가서 친구가 왔는지 확인했다.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상혁이의 친구가 터미널에 왔고 우리는 우르르 나갔다.


 상혁이 친구는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전혀 피아니스트로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덩치가 거대했고 얼굴은 검게 탔으며 반팔 티셔츠로 드러난 팔 근육이 대단했다. 상혁이의 친구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왔는데 두 사람은 오래된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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