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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7. 2022

라디오를 켜봐요 29

소설


29.


  입안이 꺼끌꺼끌하여 눈을 떴을 때 아이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바지를 벗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치론이었다. 그때 화들짝 놀라며, 너 이게 무슨 짓이야? 하며 치론이의 머리를 치웠다면 그저 술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쯤으로 넘겨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몸을 살짝 움직여 바지를 벗기는 것을 피했다. 놀라게 만들면 다른 아이들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치론이에게도 나에게도 둘 다 어색한 무엇인가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큰 소리로 말했다면 집으로 가는 동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우리를 억누를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몸은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정신은 말짱해졌다. 치론이는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를 벗기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손을 움직여 오로지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한, 주위의 무엇에게도 방해를 주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려는 의도로 인해 치론이는 결사적이 되었다.


 나는 몸을 조금 비틀어 치론이에게 등을 보였다. 치론이 역시 다른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게 자세를 바꾸고 몸을 움직여 내 바지 앞으로 왔다. 아이들은 정말 마법에 걸린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중간에 기침을 두 번 했고, 흠, 흠 하는 소리를 잠꼬대처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치론이는 여자가 되려는 것일까.


  치론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 같았다. 학교에서는 치론이의 벗은 몸을 본 사람은 없었다. 벗겨놓고 보면 마른 몸의 사내자식이 거기에 있을 게 뻔했지만 치론이는 반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어본 일이 없었다. 치론이 집에 에어컨이 있었기에 여름에는 왕왕 갔었다.


 “더운데 욕조에 얼음 띄워놓고 같이 샤워할까?”


  치론이가 말했다. 생전 학교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던 놈이 그랬다.


 “너나 해라, 같이 샤워하다가 내 고추 만지려고 그러지? 요 새끼가.”라며 우리는 웃었다. 만약 그때 같이 샤워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치론이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치론이는 어쩌면 정말 여자가 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남자, 여자 그 사이에 그대로 머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론이의 마음을 물어본 적은 없다. 늘 옆에 있는 가족처럼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치론이는 치론이의 모습 그대로 나는 상관없었다. 가끔 눈에서 보이던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같이 비칠 때면 너무 달라 보이는 녀석이라서 옆에 있기 두려울 때가 가끔 있었다.


  치론이는 나를 친구 너머의 감정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치론이가 나에게 보여준 태도나 행동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치론이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태우는 낙엽 냄새 같은 것이 났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치론이의 손톱은 꼭 여자 같았다. 치론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누군가 억지로 강요를 한다고 해서, 몽둥이를 들고 개를 패듯이 때린다고 그것이 바뀐다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다. 치론이는 치론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고 결국 벽에 부딪혔는지도 모른다. 치론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방안에 가득 차 있던 어떤 공기의 밀도가 치론이의 손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바지의 지퍼가 열리고 팬티를 걷고 나의 페니스가 밀도가 가득한 공간 속으로 튀어나왔다.


 어이없지만 페니스는 생각과는 다르게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치론이는 입을 벌렸다. 모든 것이 연기 같았다. 마치 영혼처럼 떠도는 연기가 마음의 이곳저곳에서 방황을 했다.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울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벽시계를 통해 미미하게 알 수 있었다. 현실세계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다행스러운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술에 취해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을 넘어서 향정신성 화공약품에 의해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하늘의 나뭇잎이 몽땅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언어를 잃어버린 소리였다. 천장의 형광등이 박혀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마늘장아찌의 냄새가 잘못 들어온 장소처럼 미미하게 났다. 천장의 형광등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등대처럼 보이는 순간 몸에 힘이 전부 쑥 빠져나갔다. 꿀꺽하며 침을 넘기는 소리가 한 번 크게 들렸다. 치론이는 그대로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아서 잠이 들어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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