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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8.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9

소설


9.


  “아마도 그놈은 돌을 자신의 몸뚱이의 배 밑에 깔아 두고서는 돌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함고동 씨는 그놈 가까이만 가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놈은 돌을 지키느라 얼마 동안 잘 먹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의 흙이 맛있고 영양분이 높아서 이곳으로 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동굴에서 겨우 지내고 있을 거라는 것이 우리의 분석입니다. 그래서 그놈의 몸뚱이는 내 몸의 고작 세 배나 네 배 정도 일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놈이 배가 부르고 힘이 강하면 내 몸의 열 배는 큰 괄태충이 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전 아직 그러한 크기의 그놈을 본 적은 없지만 말이죠.”


  그는 그리즐리의 말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제가 아마 그 괄태충을 본다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움직이지도 못할 겁니다. 전 저를 아주 잘 알거든요. 좁쌀 같은 좀팽이에다가 간은 작아서 불의를 보면 정의롭게 그저 지나칩니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돈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아마 그리즐리 베어 씨가 말하는 그 괄태충을 본다면 전 아마도 겁을 엄청나게 집어먹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리즐리 씨에게 방해만 될 겁니다.”


  그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학창 시절에 매일매일 왕따를 당했다. 어눌했고 가만히 있어도 그는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자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아이들은 싫어했다. 모든 것이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그(him) 자체가 왕따를 불렀다. 그에게 잘해주는 친구마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존재감 없는 그를 선생님들도 싫어했다.


 자신감은 점점 쪼그라들어 점처럼 변해 버린 지 오래됐다. 여자와 잠을 잔지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옷을 사러 들어가서 점원이 권하면 그저 권해주는 옷을 사들고 나올 뿐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괄태충과 싸움을 하는데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하하,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괄태충과의 싸움은 일대일로 제가 합니다. 제가 괄태충과 격렬하게 싸움을 하고 돌을 가지고 나올 겁니다. 단지 괄태충은 배가 고파 있을 상황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어서 인간의 냄새가 자신 가까이에서 나면 정신없이 그 냄새 쪽으로 갈 겁니다. 함고동 씨는 괄태충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도망을 가시면 됩니다.


 10미터 이상 떨어져서 도망을 가야 합니다. 간단합니다. 하지만 굼벵이처럼 보여도 그놈은 한순간에 낚아챌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괄태충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촉수를 끊을 겁니다. 그러면 괄태충은 방향감각이 없어져서 그다음부터는 수월하게 진행이 됩니다. 물론 저의 계획이지만 계획이라는 게 계획처럼 다 되지는 않겠죠.


 그놈도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모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전 함고동 씨 당신을 지켜 드릴 겁니다. 게다가 괄태충은 당신에게서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테니, 당신의 작은 용기로 저의 나라와 당신의 나라를 구하는 겁니다.”


  “하지만…….”


  터득 터득. 기차는 어쩐 일인지 쉬지 않고 달렸다. 터득 터득 거리는 느낌만 있을 뿐 소리는 일찌감치 소멸했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앞에 앉아 있는 그리즐리가 웃고 있었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기차가 밤새도록 쉬지 않고 달려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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