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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9.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0

소설


10.


  “거래처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저 실은 이번 거래를 연장시키지 못하면 전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구하는 그리즐리 씨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전 회사에서 쫓겨나면 앞이 캄캄하다고요. 이 나이에 다시 회사를 들어가기가 쉽지도 않고 새로운 일을 하기에 저의 내성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습니다. 처음에 말을 하는 그리즐리 씨를 봤을 때,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한다면, 그리즐리 씨를 따라서 동화 같은 나라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함고동 씨. 당신을 비롯해서 인간들의 문제는 인간만이 말을 할 줄 알고 세상의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마다 다 각각의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서 신이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제 일 순위를 내려주고 인간들의 생활 영위에 따라서 동물을 사육하고 포식하도록 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나아가기 위해 오래전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은 인간과 제일 가까운 것이다,라고 짐작을 한 것이죠. 신이 어떤 형상을 띠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이 그저 신의 형상을 인간으로 본 따 만들어놓고 신과 인간의 동격화를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신이 만약 지구 반대편의 인간보다 더 발달한 문명인들에게 당신들은 지구인보다 더 위에 있으니 만물의 영장인 지구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조약을 체결해 버리면 외계인들이 지구의 여자를 종처럼 부리고 목줄을 채워 끌고 다니다가 불판 위에서 팔다리를 뜯어 구워 먹는 장면을 봐야만 인간들이 아, 우리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게 될까요?”


  그는 그리즐리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즐리가 말하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글로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비슷한 영화를 봤거나. 그때에도 그는 금발의 섹시한 여자가 말라빠진 몸에 눈두덩이만 큰 외계인의 손에 개처럼 끌려 다니고 고어의 그림처럼 팔다리가 잘려 먹히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하하, 예, 압니다. 언어는 인간만이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제가 말하는 언어는 교류와 관계가 깊은 전달체계를 말하는 겁니다. 어찌 되었던 인간은 언어를 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결국은 말 때문에 멸망에 이르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지금 세계를 돌아보면 말 때문에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목숨을 앗아갑니다. 함고동 씨 주위에도 말 때문에, 말을 잘못해서 속앓이를 하고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말을 아끼며 아무 말이나 하지 않는 함고동 씨를 믿어 버렸습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걸러서 말을 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망각합니다. 우리 동물들은 정말 필요한 언어만 합니다. 우리 같은 곰이 좀 기이하기는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과 내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직면한 문제를 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릴 겁니다. 제가 당신을 믿는 것처럼 당신도 저를 믿어 보세요. 저를 믿는 마음이 들었다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십시오.”


  그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밖은 아주 깜깜했다. 요즘에는 저렇게 밤이 깜깜하지 않은데,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역시 83년도의 밤은 밤다웠구나. 창밖으로 보이는 밖의 검은 풍경 속에는 인공광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둠은 아름다웠다. 짙었지만 제대로 된 밤의 색이었다. 탁한 색이 혼합되지 않은 어둠, 오로지 어둠이었다. 그을린 밤공기의 빛이 이제는 퇴색되어 밤마저 잿빛처럼 보이는 어둠이 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어둠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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