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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2.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3

소설


13.


  그리즐리는 지치는 기색 없이 산을 올랐다. 그는 기력이 아주 모자랐음에도 그리즐리를 따라가는 것에 격한 무리는 없었다. 분명 숨은 턱까지 찼다. 하지만 보통보다 약간 빠르게 걷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는 그것이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기이한 일은 곰이 나타났을 때부터였다.


 어느새 해발 800미터까지 올라왔다. 산 위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운무의 잔재가 뿌옇게 그림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와 그리즐리는 그렇게 산 위를 오른 끝에 두 개의 봉이 보이고 그것이 축융봉이라고 그리즐리는 말해주었다. 축융봉에서 바라본 장인봉과 하늘다리도 비록 흐리기는 했지만 보였다.


  “아직 새벽이라 사람들이 없습니다. 축융봉의 밑으로 내려가면 알려지지 않은 작은 굴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괄태충이 돌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절벽 같은 바위벽을 기어내려 가야 하니 위험합니다. 함고동 씨는 나의 등에 매달리십시오.”


 그리즐리는 허리를 약간 굽혀서 올라타라는 시늉을 했다. 그가 ‘어떻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리즐리는 그의 두 다리를 잡고 그리즐리의 등으로 밀어 올렸다. 그는 엇? 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그리즐리의 등에 올라탔다. 등에 올라타니 안정감이 들었다. 그리즐리는 등에 그를 매달고 축융봉 밑의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굴 하나가 나타났다.


 굴은 시작부터 음험했으며 괄태충이 살아서 그런지 아주 습한 기운과 누린내가 기분 나쁘게 풍겼다. 그는 그리즐리의 등에서 내려왔다. 굴의 입구에서부터 생명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고 기분 나쁜 굴이었다. 그는 벌써부터 몸이 덜덜 떨렸다.


  “그놈도 추운 걸 싫어해서 굴의 아주 깊은 곳에서 살고 있을 겁니다. 여기는 입구 근처라 아주 안전합니다. 안심하세요, 함고동 씨. 한참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 어서 갑시다.”그리즐리는 굴 안으로 개척자와 같은 모습으로 들어갔다. 그는 굴 안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리즐리의 털을 붙잡고 따라 들어갔는데 굴의 입구가 보이지 않게 되자 두려움이 장막처럼 그를 엄습했다.


 굴 안은 야간기차를 타고 내다봤던 밖의 어둠처럼 컴컴했다. 암순응이 풀렸는지 서서히 굴 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즐리의 눈은 야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 빛 때문에 동굴 안이 환하게 보였다. 겨울의 차가움과는 또 다른 서늘함이 굴 안에는 흡착되어 존재해 있었다.


 서늘함을 등으로 느끼며 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축축한 공기의 냄새가 전해졌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끄으으응’하는 아주 더러운 소리가 났다. 정말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달달하고 시큼한, 짜증 나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마도 그리즐리가 말하는 괄태충의 냄새인가 보다고 그는 생각했다.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드러머가 그의 심장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새로 나온 지우개를 포장해서 정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 이후로 이렇게 심장이 뛰기는 처음이었다. 냄새가 진동할수록 심장은 더욱 심하게 뛰었다. 그리즐리가 앞발로 잠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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