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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9. 2022

10. 터미네이터의 눈물

소설

 

 

 빌어먹을 터미네이터는 1학년 여름방학이 다가올 때 뜬금없이 우리 학교로 왔다.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었으며 다리를 약간 절었다. 소문에는 무시무시한 삼청교육대 조교로 있었는데 그때 도망치던 죄수들과 싸우다가 사고로 다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터미네이터가 다리를 다쳤을 때 재소자들 중 한 명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그저 터미네이터가 절뚝절뚝 다가오면 우리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다닐 뿐이다. 터미네이터에게는 안 걸리는 게 상책이었다. 얼굴은 제임스 본드에 나오는, 007과 싸우는 죠스를 닮았다. 특히 웃으면 앞니의 테두리에 박아 놓은 번쩍이는 금빛 때문에 우리는 터미네이터를 많이 무서워했다.     


 키가 큰 사람의 특징은 목소리 통주음이 크게 울린다는 것이다. 굵고 거친 목소리에 우리는 늘 압도당했다. 터미네이터는 말을 빠르게 하는 법이 없어서 더 신경을 긁게 만들었다. 터미네이터는 어이없지만 부임해오자마자 학주가 되었다. 이전의 학교에서도 죽 학주를 도맡았다고 했다. 터미네이터는 여학교에는 가지 않았다. 오로지 남자고등학교를 떠돌며, 그것도 학생주임으로 아이들을 때려잡았다. 이전의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리를 부러뜨려 입원시킨 학생도 있다고 했다. 미친놈이었다.    

 

 터미네이터는 늘 야구 빠따를 들고 다녔는데 사실 터미네이터가 아니더라도 한문 선생(67세)과 여자 선생님들을 제외하고 국어, 화학, 수학, 물리 모두 부부싸움을 하고 오는 날이나 세금을 많이 낸 날이면 아이들을 때려잡았다. 사이코들이었다. 아직 총각인 국사 새끼는 선만 보면 퇴짜를 맞았는데 그럴 때마다 당직을 자처했고 야자시간에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때려잡았다.     


 물론 아이들이 사고도 많이 쳤지만 폭력 교실에서처럼 주야장천 얻어터졌고 하루에 하나씩의 밀대 자루나 방망이가 부러졌다. 아이들은 맞는데 이골이(클럽활동에서는 선배들에게, 교실에서는 선생님에게) 나서 어지간하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벅지를 때리면 모두 엎드려서 키득거렸다.    

 

 몽둥이로 때리면 소용이 없다고 느낀 수학은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아이들 얼굴을 때렸다. 그건 몹시 기분이 나쁜, 수치심을 지니게 만들었다. 그래서 수학의 자동차 백미러는 늘 박살이 났고 퇴근시간에 수학의 입에서 나오는 욕이 노을이 지는 하늘에 울려 퍼졌다.     


 터미네이터는 담임은 맡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에 비해 터미네이터는 근접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고 소문만 무성했다. 그건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터미네이터는 다른 선생님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에게 쏟는 애정을 감시로 대신했다. 늘 아침 일찍 교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단속했고 퇴근도 제일 늦었다. 앞니에 박힌 철 때문에 이를 더러 낼 때마다 죠스가 떠올라 섬뜩했다. 다리를 절어서 빠르게 걷지도 못하는데 터미네이터를 피해 도망 다니나 보면 어느새 앞에서 야구 빠따를 손으로 탁탁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2학년 가을의 어느 일요일에 나는 사진부 암실에 나왔다. 선배들의 사진 정리를 해 놓아야 했다. 선배들은 아마추어 사진 출품 전을 끝내고 난 후 뒷정리를 나에게 맡겼다. 1학년들은 3학년들에게 끌려 다니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느라고 진땀을 뺄 것이고, 중요한 정리는 1학년들에게 맡길 수 없는 사진부만의 원칙이 있었다.    

 

 한창 암실에서 작업을 하는데 방송 반에서 튼 음악이 들렸다. 음악은 학교의 구석구석 퍼졌다.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은 노래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일요일이라고 하지만 한 노래만 계속 학교에 울려 퍼지게 틀어대는 배짱을 가진 놈이 누구일까.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방송반으로 갔다. 아마도 1학년들이 방송 반에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송 반에는 방송부 애들은 없었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방송부의 열린 문으로 의자 등받이가 뒤로 젖힐 정도로 몸을 기댄 채 야구 방망이를 어깨에 올리고 한 손은 손잡이 끝을, 또 한 손은 타격면을 잡고 방망이 면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고 있는 터미네이터를 봤다. 뭔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닫힌 창으로 투과된 햇빛이, 라면 위의 치즈처럼 녹아내려 터미네이터의 얼굴과 옷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면서 실루엣을 만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터미네이터는 노래 하나를 계속 틀었다.


 그 노래가 로드 맥컨의 ‘YOU’였다. 나는 복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터미네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밉게만 보였고 괴물 같았던 터미네이터의 얼굴에는 늙음이 가져다준 몹쓸 주름과 흰 눈썹과 깎지 않은 수염이 회백색으로 보였는데 그 모습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때 일종의 울분 같은 것이 올라왔다. 어째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가을 햇살은 뜨거웠지만 긴팔을 입어야 하는 계절에 반복되는 로드 맥컨의 노래는 눈을 감고 있는 터미네이터에게서 파괴력이 강한 힘은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뭐랄까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닌 모습에 그동안의 무엇인가에서 배신을 당했다는 억울함과 그 속을 껄끄럽게 파고든 연민이 아주 기분을 더럽게 했다. 욕이 나올 것 같았다.


Rod Mckue의 You https://youtu.be/JV_sHncqhVM

영상출처: 유튜브 만리향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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