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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4.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5

소설


15.


  오, 그것은 괄태충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었다. 크라켄보다 더 흉측하고 마다가스카르 히싱 바퀴보다 더 징그러웠다.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얼굴은 없었다. 달팽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몸뚱이는 구더기처럼 허연 몸으로 미끄덩거리는 점액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괄태충의 얼굴은, 얼굴은,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많았다. 울고 싶었다. 왜 그동안 큰 소리로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서 크게 한 번 울지도 못해보고 저 허여멀건 하고 징그럽고 무섭고 더럽게 생긴 괴물에게 잡혀 먹힐 판이었다.


 거대한 괄태충은 큰 흡열 판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날카로운 촉수 같은 송곳니 수백 개가 흡열 판을 돌아가며 촘촘히 박혀 있었고 다가오면서 돌멩이나 동굴의 불필요한 장애물을 다 씹어 삼키며 그에게로 돌진했다. 눈도 없었다. 귀나 다리, 여타 상상할 수 있는 신체기관은 모조리 배제되어 있었다.     


 그리즐리의 다섯 배는 더 커 보였고 중요한 것은 그리즐리의 말처럼 아기 걸음이 아니라 어른이 달리는 것 같은 속도로, 아니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백 미터 앞에 다가온 듯하더니 어느새 오십 미터 앞까지 왔다. 저 멀리,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그리즐리의 소리가 들렸다.


  “어. 서. 앞. 으. 로. 도. 망. 가. 시. 오.”라는 말이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서서 달리려고 했지만 다리는 그만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렸다. 다리에 힘이 그대로 풀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 먹은 것이라곤 간이역에서 먹은 가락국수가 전부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지만 그의 몸에는 에너지를 생성할 만한 영양분이 부족했다.


 그나마 먹은 가락국수도 기차에 앉아 있던 그리즐리를 보는 순간 소화기능 저하로 면발이 불은 채로 위장과 십이지장 어딘가에 원형을 유지하고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펌프질을 했다. 이대로 터져 버려라. 그는 엎드린 채 넘어져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다가오는 괄태충이 자아내는 냄새는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역겨운 냄새였다. 냄새는 소화되지 않는 가락국수가 입 밖으로 나오게 구토를 유발했고 속에서 뽀얀 노란 액체를 끄집어내게 했다. 다가오는 괄태충의 흡열판 주둥이 속은 보이지 않았지만 끈끈한 액체에 천천히 내 몸이 부식되어서 녹아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괄태충은 20미터 앞까지 왔다.


 그는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지금 닥친 이 상황에서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돈을 빼앗는 아이들을 보고 그냥 지나쳐가지도 못했다. 지나치다 자신에게 그들의 시선이 돌아오는 것이 무섭고 불안해서였다.  


  지질한 인생.      


  결국 지질하고 남들보다 못하게 죽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막상 죽는다고 하니 우습지만 마음이 어쩐지 조금은 편해졌다. 누구나 한 번은 죽지 않는가. 오늘 죽으면 내일부터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 누가 한 말이더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이름처럼 누가 한 말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죽는 마당에 그 따위 것에 신경을 쓰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괄태충이 바로 앞까지 왔다. 대단히 크다. 몸속에 살고 있는 기생충이 뻥튀기하는 기계를 통과해서 공룡 만하게 환생한 모습 같았다. 아주 징그럽고 몹시 두려웠지만 체념을 하고 난 후 보니 괜찮아 보였다.


  나름대로 귀엽기도 했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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