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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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준범이가 한 번은 라면을 불게 두면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고 했다. 인간의 뇌가 딱 그렇게 생겼다고 했다. 준범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사람의 장기나 또는 깊은 숲 속의 어떤 생물체의 모습들이 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고 지나치는 것들에게 다 형상화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림으로 표현을 하면 이상한 형태가 된다고 했다. 준범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기 전에는 엄마밖에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아줌마가 해줬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 준범이가 조금 부러웠다. 나는 어머니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도 나에게 애살맞게 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피곤하고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려면 어머니 혼자서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했다. 준범이는 아줌마에게 모든 걸 다 말한다고 했다. 생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준범이는 엄마에게 말을 하고 아줌마는 준범이에게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5학년 때 소변을 보고 페니스를 털다가 발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페니스를 당겼는데, 소변이 아닌 다른 물컹한 액체가 나와 버렸다.


그때는 그것이 정액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때 이상한 기운과 함께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 경험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협소해져만 갔다. 나는 아직 준범이의 이야기도 엄마에게 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덥다. 살이 많아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준범이는 엄마에게 신체의 변화까지 다 이야기를 했다.


준범이가 나의 이야기를 아줌마에게 매일 했던 모양이었다. 아줌마가 나를 처음으로 초대했던 날 볶음밥을 만들었다. 볶음밥을 만들었으니 준범이와 같이 먹으라는 것이다. 볶음밥? 나는 아직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어머니가 해주는 볶음밥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볶음밥 하면 집에서 어머니가 가끔 해주는 볶음밥을 생각했다. 집에서는 볶음밥 같은 거 잘해주지 않았다. 해줘도 냉동식품으로 된 볶음밥을 데워서 줄 뿐이었다. 그 볶음밥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또 아주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냉동식품 특유의 맛이 있다. 그 맛이 별로여서 케첩을 굉장히 많이 뿌려 먹었다. 그러면 케첩 볶음밥이 되었다.


그런데 준범이의 집에서 아줌마가 만들어준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다. 기쁨의 맛이었다. 슬픈데 그 슬픔마저 달콤한 맛처럼 느껴지는 볶음밥이었다. 아줌마에게 초대를 받아서 준범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볶음밥의 냄새가 맛있게 났다. 처음 초대를 받고 아줌마를 집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에 가끔 올 때 차려입고 왔던 아줌마의 모습과는 달랐다. 준범이의 큰 누나처럼 보였다. 나는 담임이 왜 준범이를 자주 많이 교무실로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준범이가 교무실에 담임을 만나고 오면 담임이 엄마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준범이가 말했다.


아줌마는 미술을 전공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준범이도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준범이도 아줌마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다른 아줌마들과는 달라고 많이 달랐다. 준범이의 집 거실에는 아줌마가 그린 그림들이 있었다. 그림 하나하나가 심오해서 한참 쳐다보게 만들었고 계속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60년대 구상화도 있었고, 로런스 라우리의 그림처럼 그림자가 빠져버린 성냥개비 같은 길고 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아줌마는 나에게 그림에 대해서 궁금하면 질문을 하라고 했고 나는 여러 번 질문을 했다. 아줌마는 그림에 대해서 대답을 잘 해주었다. 아줌마가 옆에 오면 좋은 향이 났다. 처음 맡아보는 부그럽고 달콤한 냄새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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