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되었다는 건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패티 김의 노래 중에 ‘가을의 연인’이라는 노래가 있다.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패티 김의 예전 노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노래 가사는 어쩐지 길옥윤을 향한 가사처럼 들린다. 나는 패티 김의 노래를 꽤 많이 듣고 있고, 많은 노래를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시나무새’와 ‘못잊어’를 가장 많이 듣는다.
근래에 김태연이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나와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가시나무새’를 부르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게 노래를 부르는 거지? https://youtu.be/ui5qrZ4kl10
태연이의 노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을 정도로 어머니 역시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 나는 패티 김의 공연을 한 세 번 정도 보러 갔었다. 그리고 패티 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 모친이 패티 김을 좋아해서 내가 어린 시절에 집에는 내내 패티 김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패티 김의 노래가 흡수가 되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944#comment
패티 김의 목소리는 50대가 넘으면서 정말 아름답고 좋다. 그건 분명하다. 초기의 앨범을 들어보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가 들린다. 그런데 또 그런 패티 김의 초기 목소리가 좋아서 요즘은 오래전에 어머니가 듣던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있다. 노래라는 게 시끄럽고 듣기 싫을 때도 있는데 또 없으면 허전해서 찾아서 듣게 되고, 음악이라는 건 참으로 희한하고 요상한 요물단지다.
시월이 되자마자 하늘과 공기 그리고 사람들이 시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늘도, 강도, 공기도 모두가 시월이다. 이 글을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28, 9도를 오가는 늦더위가 기승인데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찬바람이 불거라고 한다. 이제 조깅을 하는 복장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시기다. 여름 내내 헐벗고 달렸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조깅하러 나오면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르신들이 강변에 마련한 벤치에 오종종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마저 정겨운 시월이다.
내가 있는 도시는 3년 가까이 바이러스 때문에 매년 열렸던 행사가 열리지 못했는데 10월 7일부터 전국체전이, 10월 19일부터는 전국 장애인체전이 개최하게 되어서 도시는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분주하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저 강에서 세계 카누 대회도 열려서 외국인들이 바글바글 하기도 했었다.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멎었던 인간사회가 이제 서서히 작동을 하려고 한다.
여름의 뒤 꽁무니에서 뜨거움을 발판 삼아 열심히 허공을 날아다녔던 고추잠자리들도 사라졌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바야흐로 들리는 시기다.
그리움을 가을바람에 말려 본다
날이 좋아서 바닷가에서 눈을 감고 저곳을 바라보니
아 글쎄 문정희 시인이 그리움을 말리고 있었다
나 또한
우기에 축축해진 그리움을 모처럼 꺼내 가을바람과
가을 햇살에 말렸다
바다도 파랗게 질려있고
하늘도 질린 얼굴에
햇살은 참 좋아 울고 있는
미세 먼지 하나 없이 이리저리
호롱 호롱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발가락을 드러내고 그리움의 이불을 말리고 나니
마른 그리움에 그대의 언어가
군데군데 노랗게 스며들어 있었구나
시도 한 번 적어보고 노래도 한 번 흥얼거려본다. 조깅을 하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 그때 아마 음악은 에스더의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은 말랑말랑 하지만은 않다. 가을은 여름에 타고 남은 만큼 처절하며 지독한 계절이다.
최승자 시인의 가을은 개 같은 가을이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고 했고,
김남조 시인의 가을은 모든 가을에 앞질러 그리움이 오곤 했었지 병이 깊어지듯 가을도 무겁고 힘든 수레라고 했다.
가을은 그렇게 짧지만 강하게, 곁을 스치듯 팔에 금을 긋고 지나갔다.
그 어느 계절보다 아름다워서 따갑고 슬픈 이름 가을, 당신은 그런 가을을 닮았더랬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금야금 맛있는 것을 갉아먹듯, 애틋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 중심에 우리가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