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린의 손길 20

소설

by 교관


20.


나는 오래전부터 이 교단에서 대해서 궁금했고 직접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경험을 그대로 글로 적어내고 싶었다. 메를린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고 본교단을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교단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한 계획이었다. 이단종교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수기를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전혀 그들을 안 좋은, 나쁜, 혹은 호러블 한 사람들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정상인 사람들이 더 사람들에게 공격적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약에 취해 해코지를 한다. 신도들은 마치 신생아처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욕을 하는 일도 없으며 분노에 찬 눈으로 누군가를 이유 없이 노려보지도 않는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믿고 있는 존재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그렇게 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을 몽땅 버려 버리고 만다. 생활의 냄새라는 것이 없다. 기본적인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없다. 인간이라면 눈에 드러나는 생활의 형태가 있지만 신도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물욕이 없는 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재산이나 통장에 든 돈을 전부 헌금으로 내게 한다. 그런 돈의 흐름을 알 길이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종교에서 하는 사업은 국가에서 크게 간섭하지 않고 허용했다. 무엇보다 신도들은 목사라고 불리는 최고자에게 몸을 내준다.


그러던 중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런 이런 모임이 커뮤니티에 떴는데 좀 이상한 것 같다,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그런 종교모임의 일환인 것 같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접근을 하게 되었다. 주로 젊은 층을 위주로 손을 내미는 것과 영어 모임을 하는데 인원수가 적다는 점이 이상했다.


그렇게 접근을 해서 같이 모임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교단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허물어진 부분을 건드렸다. 그 부분을 계속 건드려 상처를 깊게 내고 손을 내밀어 교단으로 끌어들였다. 한 번에 어떤 게시를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교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금씩 욕조에 물이 차오르듯 교단에 스며들게 된다.


신도가 되면 교단에서 아예 생활을 하거나 직장을 버리게 된다. 교단에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그 프로그램에 단계별로 참석하게 되고 모든 프로그램을 마쳤을 때에는 교단의 완전한 신도가 되어 있다. 그 사이에 모아둔 돈이나 집에 있는 돈을 전부 가지고 오게 한다.


이제 나는 메를린의 눈에 들어서 본 교단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임 회원들 중에서는 단 한 명만 선택되었는데 그 회원이 나였다. 그래야 했다. 그래서 열심히 모임에 참석을 했다. 최지은 씨와 쌍둥이는 또 모임을 통해서 교단으로 들어올 수 있게 믿음을 쌓는다. 그래서 언젠가는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은 망가져서 복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 교단 안에는 일반적인 인간의 삶을 버리고 귀의해서 생활하는 신도들이 있다. 아이들이 딸린 신도들이 있다. 임신한 신도도 있다.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신도가 되어 종교에 귀속되어 그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교육이나 건강문제도 심각할 수 있다. 병이 있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기도로 치료를 대신하는 모습도 있었다.


어떤 코뮌이든지 폐쇄적이 되면 구멍이 생기고 점점 구멍은 곰팡이가 피어난다. 이제 나는 본 교단에 들어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신도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려고 한다. 신도들에게는 현 사회의 어떤 이슈나 일어나는 현상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린이처럼 매일 기도를 하며 행복에 젖어 지내고 있다.


티브이나 영화는 볼 수 없고 책도 검열을 통과한 책만 읽을 수 있지만 그들은 전혀 불만이 없다. 알 수 없는 박탈감 같은 감정은 신도들에게는 없다. 메를린은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같았지만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제 메를린이 내민 손을 잡고 본 교단으로 입성을 한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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