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수기 1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by 교관

1.


그들을 만난 건, 저에게는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하고자 하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대로 죽어 버렸을 겁니다. 영원히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묶인 채 소멸한다는 것은 몹시 서글프고 슬픈 기분입니다.


그들과 같이 술을 마신 술집 벽 달력 속의 아가씨는 ‘그러니까’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와 달력 속 여자와 매치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지만 저는 여자의 형태만 봐도 아내가 떠오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을 만나서 기뻤던 것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이 다른 모두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다를 거라는 불안이 저를 불면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는데 저의 불행이 다른 이들의 불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드는 좌절을 그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저는 워낙에 가난하게 자랐기에 먹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이 제일 큰 것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은 없는, 그런 하등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렇게 큰돈은 그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나 생각을 할 수 없게 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세브란스 병원에서 돈을 받고 병원을 나왔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아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만 깨닫고 말았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시체인 아내를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매는 꼴을 저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의 죄악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며 무릇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많은 돈을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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