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당일
19.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동이 잘못 본 것은 아니다. 앞서가는 여자를 보고 멍하기만 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성범죄가 만연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눈앞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나 마동은 지극히 리얼한 인간이었다. 현실에서 미신이니 형이상학적 궤변 등은 마동의 문화권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이라도 일단 눈앞에 실체가 보여야 한다. 실체를 받아들인 다음, 그다음에 허구적인 공상과 상상이 가능한 논리를 적용시키는 타입니다. 그것이 마동이 하는 일과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저 여자는 어떠한 논리나 정의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전적 해석으로 확정 지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없는 관계로 대나무공원에서 몸을 풀지 않고 바로 달려서 지나치려고 했지만 공원의 벤치에서 잠시 멈추어서 몸을 풀기로 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조깅코스에서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계속 달리다가 다시 멈추었다가 또다시 달려 나가는 것을 반복하면 달리는 기복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늘같이 이렇게 달리기 좋은 날에는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앞으로 뻗어나가는 행운이 주어지는 것이다. 진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어딘가에서 활자나 문형이나 어떤 방식으로든 개념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결단코 진리가 아닌 사실은 될 수 있으면 입에 담지 않으려 했다. 지금 보는 저 여자에 대해서 어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믿어 줄 사람도 없지만 마동 역시 입 밖으로 꺼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만약 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꽤 진지하게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해봤지만 답은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마동은 몸을 풀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저 여자를 뒤따르며 관찰했다. 여자는 걸음걸이가 영화 화면 속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며 걸어가는 비현실적인 걸음처럼 보였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가 걸어가는 속도보다는 빨라 보였지만 어쩐지 걸음걸이는 알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져있는 듯했다. 누군가 억지로 걷게 하는 모습처럼.
여자의 걸음걸이는 리듬을 타는 것도 아니며 특정한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걸어가는 것뿐이지만 걸음걸이에는 설명이 안 되는 미묘한 체념이 있었다. 행복과 불행이 보이지 않았으며 걷는 행위가 효율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만 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풍기는 걸음걸이였다. 천천히 조금 걷다가 잠시 멈추는 듯했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이 멈췄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람이 많았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처음 봤을 때처럼 얼핏 보면 술에 취한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처럼 보이겠지만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걸음걸이였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하겠지만 치마 밑단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보통 걷는다고 하면 다리를 교차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치마는 그 반동으로 어떤 식으로든 침묵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저 여자의 치마는 그러한 논리에서 완전하게 벗어났다. 전혀 치마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하. 지. 만. 여. 자. 는. 분. 명. 히. 천. 천. 히. 걷고 있음이 확실했다.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처럼 꾸준히 앞으로 가는 것에는 ‘속도’라는 것이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토끼가 한눈을 팔고 멈춰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마동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조깅코스를 달려왔다. 여자가 마동보다 앞서 걸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마동은 여자를 지나치면서 자세하게 봤다. 어둠 속에서 흐린 달빛과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보이는 저 여자와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흑발이었다. 밤이지만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은 고혹적인 빛깔이었다. 아주 강한 흑발, 여름의 밤보다 몇 배나 짙은 검은색이었다.
이런 얼토당토 안 한 상황에서 여자의 머리카락이나 눈에 들어오다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