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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0

1장 당일


20.

 강변을 따라 치누크가 한번 크게 불어왔다. 이질적인 바람은 마동의 마음에도 묘한 파동을 일으켰고 반사적으로 강변의 모습을 이전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치누크가 불어와 대숲을 흔들고 얼굴에 있는 땀방울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바람이 물고 온 기이한 냄새는 지나간 시간의 냄새이기도 했고 닿지 못한 먼 곳에서 시작하여 이곳까지 불어온 바람처럼 느껴졌다. 치누크는 당연히 한여름의 중간쯤에 불어오는 그런 뜨거운 바람이 아니었다. 온도도 그렇지만 냄새가 달랐다. 한여름의 바람 냄새라는 것을 딱히 해석할 길은 없지만 후욱하고 폐로 들어오는 습한 바람의 냄새가 아니었다. 지금 불어오는 치누크의 냄새가 그랬다.


 보통 한여름의 냄새는 환영받지 못한다. 냄새라는 것은 싫든 좋든 인간의 코를 통해 뇌로 전달이 된다. 냄새의 싫고 좋음을 뇌는 인지를 한다. 마동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름에는 그러한 냄새가 도처에 존재한다. 그것과는 다른 냄새가 바람을 따라와서 풍겼다. 지금 불어오는 치누크는 얼굴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왔다. 바람이 마동을 스쳐 걸어가는 여자에게 도달했지만 여자의 머리카락은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마동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실체와 비논리가 톱니바퀴에 의해서 서로 어긋나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동시 존재하고 있었다. 치누크라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부터 무엇인가 비틀어지고 이질적이라고 판단을 해야 했다.


 오늘은 조깅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인간은 유기체라는 것, 미묘한 물질의 세포 형질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마동은 늘 상기하고 있었다. 인체는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을 지극히 피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의 사이클을 꼬박 쉬지 않고 돌린다면 어느 순간에 삐거덕한다는 것이다. 피곤한 날은 조깅을 피하고 다른 거리를 찾아봐야겠다고 한 번 생각했다.


 얼굴만 빼고 긴팔이 긴치마를 입은 여자는 이렇게 무더운 날임에도 지나칠 때 보니 전혀 더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창백하고 차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온몸을 소중한 보석으로 감싸듯 두꺼운 옷으로 꽁꽁 가렸다. 흑발의 머리는 길어서 허리까지 내려와 더욱 더워 보였지만 더위를 전혀 타지 않는 체질일지도 모른다. 병 때문에 여름에도 긴팔과 긴치마를 입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팔다리에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저 여자는 이 모든 가설과 함께 겨울을 너무 좋아하는 체질인 것이다. 그래, 한 여름에도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겨울을 동경하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의 향과 겨울의 온기와 겨울의 따뜻함을 좋아한다. 추운 계절이 전하는 따사로움의 위배를 사람들은 사랑했다. 일 년 동안 자주 내리는 비와는 다르게 겨울에는 눈이 있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커피 향도 어울리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사람들은 겨울을 좋아한다. 하지만 마동은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름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땀을 흠뻑 흘릴 수 있어서 좋아했고 크리스마스가 없어서 좋았다. 애써 겨울을 부정하기까지 했다. 여름은 조깅을 하며 흘린 땀이 빨리 마르지 않아서 좋았다. 오래전에는 역시 겨울이 자신에게 맞는 계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마동 자신의 오해였다. 계절에게도 오해를 하다니,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언젠가부터 마동의 육체가 먼저 여름을 반겼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여름 속, 여름의 밤을 신혼의 주말부부가 일주일을 건너 만났을 때처럼 반겼다. 봄이 지나 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하면 마동의 몸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축제 준비에 돌입한다. 짧디 짧은 여름의 밤이 출발을 알리면 신체는 여름밤의 정취 속으로 달려들어 한없이 그 속을 휘젓고 다니다가 새벽에야 힘이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마동에게 있어 여름이라는 계절은 몸을 마음껏 풀어줄 수 있고 달려고 겨울만큼 힘들지 않은 계절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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