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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1

1장 당일



21.

 대체로 막연하고 땅 밑의 지층의 비틀림을 걱정하는 불투명한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여름에는 한 시간 반 이상을 달려도 기분만은 상쾌하다. 열기가 가득한 여름에 두 시간을 걸으면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한 시간을 달리면 맑은 정신이 되었다. 조깅 후에 차가운 물로 진지하게 샤워를 하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폭력적인 잠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여름에만 가능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는 따뜻한 냄새가 도처에 널려 있을지 모르지만 마동의 몸은 겨울에는 민감해졌다. 건조해진 피부는 가려움을 유발했고 잠을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긁어버리면 긁은 살갗에서 피가 올라왔다. 피부의 표피를 뚫고 나오는 피는 마동 자신의 피가 아닌 듯 보였고 자다가 일어나서 피를 닦고 나면 긴긴 겨울밤을 가려움과 싸우며 눈을 뜨고 지새우기도 했다. 그저 건조해서 그렇다고 병원에서 말하지만 마동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동의 신체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름이라는 찬란한 계절을 육체는 잘 받아들이고 실컷 적응해놨는데 겨울이 오면 신체가 투정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터무니없지만 겨울이 되면 그런 생각을 내내 하게 되었다.


 날이 차가워지면 나라에서 지정한 명절이라는 연휴가 있다. 명절은 식칼 같은 것이라 여겨졌다. 명절 이전과 이후의 환경을 싹둑 잘라버렸다. 더불어 마동의 신체도 명절의 경계를 지나 달라졌다. 명절이 오면 고향으로 갔다. 경진 군에 있는 고향집을 찾았다. 경진 군 삼리면의 고향 집에는 여생을 밭일을 일구며 지내온 어머니가 있다. 명절이 오면 경진 군의 고향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고 명절 기간 동안 오전에 그곳의 동네를 한 시간 이상 달렸다. 공기가 맑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조금만 달려도 숨이 막히고 힘이 들었다. 도시생활의 반복적인 패턴에 익숙해져 있어서 일까, 늘 달리는 곳을 벗어나서 어색한 땅을 밟으며 달리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체 역시 고향땅에서 달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왜,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인사를 할 만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명절은 말 그대로 뚝 하고 끊어져 버린다. 고향이라고는 하나 마동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라든가, 늙으면 이곳으로 와서 살아야 하는 성찰은 없다.


 여름이 지나고 12월이 다가올수록 명절도 다가오고 연말이 되면 회사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행사도 반갑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달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회식을 가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마동이 다니는 회사는 다른 회사에 비해 회식의 횟수가 적고 사원들이 비교적 술에 절어있는 회식을 즐기지 않음에도 회식을 가지게 되면 몇 명은 흙탕물을 만들기 마련이다. 술과 담배냄새와 새벽까지 지속되는 언어유희의 향연은 전쟁만큼이나 싫었다. 하지만 마동은 회식에 참석을 해야 한다. 마동은 입사하여 앞만 보며 일을 해서인지 부서의 팀장이 되었으며 회식자리에서 뜬금없이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그들의 말을 스케치했다. 연말에 가지는 회식자리에는 회사와 연계되어 도움을 주고받는 타사의 사람들도 참석을 하기 때문에 오너는 연회 자리에 항상 마동을 대동했다. 연회를 가지고 난 이후의 뒤풀이와 회식자리를 마동은 그동안 피해왔다. 그렇지만 오너는 회식자리도 중요한 하나의 이음새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 뒤로는 죽 참석하게 되었다. 어떻든 그렇게 해야 다음에 오는 일 년을 나름대로 아무런 사고 없이 무탈하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다. 생각대로 생활을 하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 역시 조화와 균형이라면 그렇게 불러야 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한 해가 지나간다는 덧없음에 또 기분이 상하고 결락을 맛본다고 해서 사람들은 겨울의 끝에서 끈을 놀칠 수 없어했다. 그리하여 연말에는 취객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것과는 다르게 마동은 겨울, 그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다. 신체가 여름을 더 받아들일 뿐이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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