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수기 6

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by 교관


6.


저는 외판원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독했었습니다. 하지만 외판을 하면서는 그걸 숨겨야 했습니다. 내가 아닌 내가 되어야 했습니다. 서적을 판매하는 곳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글을 위트 있게 적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여러 개의 보이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수월하게 열 수 있는 건 위트입니다.

위트가 있으면 외판원 생활도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실은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판매한 책의 돈을 수거하는 것 때문에 외판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월 말에 계산을 해준다는 말로 저를 돌려보낸 다음 월 말에 가면 집에 아무도 없거나 심지어는 남몰래 이사를 가버리기도 합니다.


위트는 인간들에게서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빌미 같은 것을 제공합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그래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넥타이를 사고 귤을 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다른 곳으로, 어디 좋은 곳으로 가서 남은 돈을 다 써버릴 요량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저는 택시기사에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 중 ‘안 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소용없는 일이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안 되는 것일까요.

세 명이 가서 말하면 한 사람이 말했을 때보다 좀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디로 우리는 가야 할까요.

저는 그들에게 어디로 갈까 물었지만 그들 역시 목적지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리라고 했습니다. 참 우습지요. 우리는 중국집에서 나와서 더 근사한, 이를테면 달력 속의 ‘그러니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이라든가 크라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든가, 좀 더 따뜻하고 차가운 술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려고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집에서 나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들은 스무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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