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5.
두 분?
이 돈을 오늘 밤에 어떻게 다 써버릴까요?
이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주십시오.
멋있게 한 번 써 봅시다.
저는 웃었습니다. 내내 어두운 표정이 그들의 호쾌한 동조를 끌어내지 못했는데 멋있게 이 많은 돈을 써버리기를 바라며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슬픈 일을 당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돈이 있다면 상쾌하지 않았던 아침이 상쾌해지는 걸까요. 정말 그런 것일까요. 돈이 있다면 괴로움에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요컨대 배를 채우면 해갈이 되는 괴로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불면이었던 밤이 푹 잠을 잘 수 있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외판원 생활을 겨우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저는 인간을 아주 경멸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을 곁에 두지 않고는 못 버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불신이 저의 깊은 곳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신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생성시켰고 그것은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성장해 갔습니다.
공포는 배고픔처럼 격렬하게 위장을 쥐어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양품점에서 넥타이를 바로 사 주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넥타이로 하나에 삼백 원씩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넥타이를 고르라고 하고 저는 이 넥타이는 내 아내가 사주는 거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질렀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통이 불신과 공포 때문에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입니다. 양품점을 나와서 귤 장수가 있기에 그들에게 귤도 사줬습니다.
64년의 겨울에는 귤도 비쌉니다. 돈이 있어야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입니다. 저는 또다시 저도 모르게 아내는 귤을 좋아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