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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8

1장 당일


28.

 마동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는 사람들이 없으면 조깅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더불어 내일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확실하게 접근했다.


 볼썽사납게도 트레이닝 바지의 앞섶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채로 달리는 모습이라니.


 사람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있었다면 마동은 발에 쥐가 났을 양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발기가 수그러질 때까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깅코스에 사람이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없기에 마동은 그대로 달렸다.


 평소에 조깅코스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 그들은 왜 오늘은 운동을 하러 나오지 않는 것일까. 담합이라도 한 것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집안에 콕콕 박혀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도 조깅코스에 몇 명은 굳은 결의를 한 얼굴로 달리는 것에 전념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마저 없다. 일렬횡대로 시끄럽게 걸어가던 아주머니들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전혀 없는 덕분에 발기한 채 마동은 조깅을 했다.


 발. 기. 한. 채. 로. 조. 깅. 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떤 남자가 발기한 채로 조깅을 할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마동은 그 신비로운 여자와 빗속에서 섹스하는 모습을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렸다.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어두운 야외에서 섹스를 하는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다가왔다. 머릿속의 환상은 사춘기 시절 ‘꿀벌들’에 나오는 성기를 죄다 벌리고 있는, 입술이 두터운 금발의 이름 모를 외국 여자와의 하룻밤을 꿈꾸는 청소년처럼 환상이 실제처럼 다가왔다. 가슴골 속의 가슴이 드러나는 모습에 마동은 꽤 격한 흥분이 섞인 소리마저 냈다. 이럴 수가! 더 이상의 조깅은 무리였다. 앞으로 더 달려봐야 틀림없이 조깅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호흡이 멋대로 되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남녀는 도대체 몇 살까지 섹스에 흥미를 가질까.


 신비로운 여자의 가슴골이 생각이 났고 여자의 매혹적인 눈빛이 또 생각이 났다. 여자는 지금쯤 뒤쳐져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터였다.


 비를 맞지 않으며.


 마동은 여자가 궁금해 다시 뒤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을 했다. 돌아가서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먼저 어디 아픈 건 아니냐, 병원에 가보지 않겠나, 아아, 너무 진부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길거리에서 말을 걸기란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택시를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 말을 걸면 백이십 프로 거절당하거나 쳐다보지도 않는다. 용기라는 건 어디에도 쓸모없는 하찮음 따위로 전력하게 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길에서 보고 말을 걸고 만남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경우는 용기와는 무관하다. 남성의 외모가 조지 클루니나 그레고리 팩을 넘어설 수 있는 외형적인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길거리를 지나가다 이성에게 말을 걸어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기란 있을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동은 긴팔에 긴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으로 머릿속이 잠식되어간다는 것을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자의 가슴골이 눈앞에서 아른아른거렸다. 생각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화면은 신경조직의 시냅스를 타고 시야에 그 모습을 선연하게 나타내 주었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터의 홀로그램처럼 말이다. 마동은 이전의 자신을 생각해봤을 때 여자의 가슴골을 본다고 해서 이렇게 끌림이 들었던 경우는 없었다. 어떻게든 말을 걸고 이렇게 잡아당기는 끌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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