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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

2장 1일째



31.

 거울 속은 꼭 마동이 서 있는 바깥의 세계와는 다른 공간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마구 돌아다닐 것 같고 무생물이 생물화되어 있고 오목성 때문에 모든 것이 조금 일그러져있는, 그런 세계 같았다. 거울에 비치는 욕실의 모습은 안과 밖이 같았지만 거울에 비친 상이 시계를 넘어서 마동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현실의 몸에 구멍을 내고 싶어 하듯 거울 속의 상은 마동을 확실하게 힘을 실어서 노려보고 있었다. 비슷하게 보이나 완전히 차단된 다른 공간의 세계처럼 거울 속의 공간은 부피나 밀도가 달라 보였다. 조금 겁이 났다.


 이 모든 현상이 감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거울을 통해 보이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닌 듯 일그러져 보였다. 푸석하고 거친 피부의 결을 지닌 마동 자신과 닮은 얼굴은 분명히 달라 보였다. 마동은 거울을 손으로 문질렀다. 손에 묻은 물기 때문에 거울의 표면이 일렁거렸다. 거울 속의 짚더미처럼 생명력이 없고 나무껍질처럼 거친 피부의 또 다른 마동이 거울 속에서 손을 들어 마동과 똑같이 움직였다. 감기가 생각보다 심했다. 지금부터라도 얼굴의 피부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도용 세이빙 크림을 산타클로스의 수염처럼 골고루 턱에 바른 다음 질레트 12 날의 면도날을 이용해서 수염을 깎고 크림을 씻어냈다. 면도날이 평소처럼 잘 들지 않았다. 오늘따라 그런 것인지 면도날의 닳는 시점이 오늘부터인지 잘 들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염을 깔끔하게 깎이지 않았다. 12 날의 면도날은 한 번에 수염이 깔끔하게 깎이는 면도날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이다. 면도날을 이용해 여러 번 수염을 깎으면 피부에 손상을 주게 된다. 하지만 마동은 한 번 더 면도날을 사용해서 칼국수의 장인이 반죽을 하듯 진지하게 수염을 밀었다. 씻어내고 난 다음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이 깔끔하게 수염이 깎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달랐다. 달라진 점이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그 변화를 눈으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었다. 언어로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달라지긴 했다. 마동은 거울을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얼굴을 씻어냈다. 턱을 약간 들고 다시 돌려가며 확인을 했다. 육안으로 달라진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은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하고 욕실에서 나왔다. 오늘은 정신과 상담도 신청해야 하고 회사의 업무도 집중을 해야 한다. 바쁜 하루가 펼쳐질 것이다. 옷을 입고 나오는데 집안이 꽤 서늘하게 느껴졌다. 역시 감기다. 아침은 매일 챙겨 먹고 싶어서 언제나 조금 일찍 일어나서 회사 근처의 던킨도넛으로 간다. 거기서 오전에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세트메뉴를 먹는다. 그곳이 아니면 집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갓 만들어낸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거나 맥도널드에서 역시 세트메뉴를 먹고 출근을 한다. 베이커리의 샌드위치를 자주 사 먹지만 오늘은 좀 늦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샌드위치는 다 떨어지고 만다. 오전을 맞이하는 회사원들에 비해서 비교적 마동은 부지런한 편이라 집에서 30분만 일찍 나오면 아침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이치를 터득했다. 한 시간 일찍 나온다면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깐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아침시간에 유리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풍경은 대부분 허둥지둥하며 출근하는 모습뿐이지만 마동은 느긋했다. 부지런하면 오전에 사치라고 불리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시간의 사치는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아무나 그것을 손에 쥘 수는 없다. 출근하기 한 시간 전이라 아침을 먹을 때는 천천히 진지하게 먹는다. 정크 푸드지만 최대한 시간을 들여 씹어 먹는다. 그런 류의 음식은 몇 번 씹지 않아도 입안에서 금방 부서져 쉽게 꿀꺽 목으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몇 번 씹지 않고 넘기게 되면 한쪽으로 씹을 수밖에 없기에 정크 푸드를 좋아하는 이들의 특징은 턱이 비대칭으로 틀어져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에 의사들에게 얼씨구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 진화와 멸종, 그리고 비대칭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하나의 법칙 같은 것이다. 그래서 마동은 양쪽으로 골고루 많이 씹었다. 그 행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음식을 빨리 먹지 않는 것이다.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씹어 먹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아침을 먹으며 트위터로 알고 지내는 미국에 있는 성인배우와 잠깐 대화를 한다. 마동이 아침을 먹을 시간이면 그녀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한두 시간 전이다. 마동은 그녀와 꽤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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